
9월 16일 (화)
저널 쉰일곱번째
‘새내기 편집자의 SCL 이야기’
안녕하세요. SCL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윤혜정입니다. 세품아 저널에 올라온 인턴 모집 글을 보고 지원을 결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곳에 제 글을 싣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SCL과 함께 한지도 벌써 한 달 반이 지나갑니다. 제가 세품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하이머스타드 영상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 스물두 살. 어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마음과 아기처럼 응석부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며,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때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 책도 붙잡아보고, 알바도 정말 많이 해봤지만 그보다 더 크게 마음을 흔든 것은 그 영상이었습니다. 처음엔 ‘6호 시설’이라는 단어 때문에 차가운 공기와 쇠창살을 상상했지만, 영상 속 풍경은 전혀 달랐습니다. 작은 교실과 운동장의 모습들은 영락없는 대안학교 같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세상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만 나누려 했던 시선의 변화를 경험을 했고 이 세상에 정의와 자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처음 깊이 생각해봤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저 “큰 깨달음을 주는 영상”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세품아에서, 심지어 제가 사랑하는 책과 관련한 일로 일할 수 있음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SCL에 와서 ‘책력’이라는 독후 인증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욱 감사했습니다. 좋든 싫든 일단 뭐라도 읽기 시작하면, 학생들이 머무는 6개월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세상에 대한 얕은 고찰들을 해나갈 것이라는 제 내면에 확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주 미미하더라도 말이죠. 물론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예상했던 대로 글이 많은 책을 매우 싫어합니다. 읽고 쓰는 법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기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체득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긴 글보다 짧은 글이, 촉촉하기 보다는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습성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복잡한 인간들에게 복잡한 글은 마치 동족 혐오의 대상이 아닐까 하고요. 대체적으로 명료하고 담백한, 끝이 딱 떨어지는 쉬움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답을 찾아 긴 소설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은 어쩌면 어른에게도 벅찰 수 있기에 도서관에서 졸든, 장난을 치든, 멍을 때리든 한 글자라도 읽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기특합니다.
언제는 한 아이가 책 읽는 게 재미없다며 투덜거리더니, 의자에 앉자마자 곧바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속으로는 “아, 저 친구는 이제 도서관에 자주 오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아이는 어김없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와 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이상했습니다. 흥미를 잃었다고 말한 아이가, 왜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으러(그리고 어쩌면 자러) 오는 걸까? 책장을 넘기다 졸음을 참지 못해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면서도, 매일 도서관에 발걸음을 옮기는 그 끈기가 신기했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어쩌면 책 읽기는 그렇게 완벽할 필요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몇 쪽만 읽어도, 심지어 매번 잠들어 버린다 해도, 책과 만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쌓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보며, 독서는 성과나 속도가 아니라 작은 습관이라는 것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일한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한 선생님께서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참 잘 듣는다”고 그러셨습니다. 처음에는 왜지? 싶었습니다. 저였다면 답답하고 숨막히는, 당장이라도 공부해야만 할 것 같은 곳으로 인식되어 싫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일해보니 아이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겹겹의 책장 속에서 우리 모두 한 명의 “작가”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서열이나 눈치 대신 각자의 취향과 호기심이 존중받는 곳. 책을 고르는 기준은 외부의 힘이나 강요가 아닌 온전한 본인의 관심이고, 자리를 차지하는 순서 또한 서열이 아닌 우연입니다. 그래서 도서관 안에서만큼은 아이들이 잠시나마 평등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도서관을 나서는 아이들의 얼굴에 잠깐의 여유와 안도감이 더욱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흔적에 그치지 않고, 잠시나마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으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머물렀던 시간의 증거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평온이 아이들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 언젠가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마주할 힘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글 : 윤혜정)
9월 16일 (화)
저널 쉰일곱번째
‘새내기 편집자의 SCL 이야기’
안녕하세요. SCL 도서관에서 일하고 있는 윤혜정입니다. 세품아 저널에 올라온 인턴 모집 글을 보고 지원을 결심했던 것이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이곳에 제 글을 싣게 되니 감회가 새롭습니다. SCL과 함께 한지도 벌써 한 달 반이 지나갑니다. 제가 세품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하이머스타드 영상을 통해서였습니다. 그때 제 나이 스물두 살. 어른으로서의 책무를 다하려는 마음과 아기처럼 응석부리고 싶은 마음이 공존하며, 청춘이라는 이름으로 때늦은 사춘기를 겪고 있었습니다. 세상과 나 자신을 이해하고 싶어 책도 붙잡아보고, 알바도 정말 많이 해봤지만 그보다 더 크게 마음을 흔든 것은 그 영상이었습니다. 처음엔 ‘6호 시설’이라는 단어 때문에 차가운 공기와 쇠창살을 상상했지만, 영상 속 풍경은 전혀 달랐습니다. 작은 교실과 운동장의 모습들은 영락없는 대안학교 같았습니다. 영상을 통해 세상을 단순히 옳고 그름으로만 나누려 했던 시선의 변화를 경험을 했고 이 세상에 정의와 자비가 얼마나 복잡하게 얽혀 있는지 처음 깊이 생각해봤던 것 같습니다. 그때는 그저 “큰 깨달음을 주는 영상” 정도로 생각했는데 이제는 그 세품아에서, 심지어 제가 사랑하는 책과 관련한 일로 일할 수 있음이 신기하고 감사할 따름입니다.
특히 SCL에 와서 ‘책력’이라는 독후 인증 프로그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을 때는 더욱 감사했습니다. 좋든 싫든 일단 뭐라도 읽기 시작하면, 학생들이 머무는 6개월 혹은 그 이상의 시간 동안 세상에 대한 얕은 고찰들을 해나갈 것이라는 제 내면에 확신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것이 아주 미미하더라도 말이죠. 물론 도서관에 오는 아이들은 예상했던 대로 글이 많은 책을 매우 싫어합니다. 읽고 쓰는 법을 아는 인간이 되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기에 책읽기의 즐거움을 체득했으면 하는 마음이 굴뚝같지만, 긴 글보다 짧은 글이, 촉촉하기 보다는 건조한 문체를 좋아하는 아이들의 습성이 이해가 안 가는 것은 아닙니다. 가끔은 이런 생각도 듭니다. 복잡한 인간들에게 복잡한 글은 마치 동족 혐오의 대상이 아닐까 하고요. 대체적으로 명료하고 담백한, 끝이 딱 떨어지는 쉬움은 누구에게나 선망의 대상인 것 같습니다. 답을 찾아 긴 소설을 이리저리 헤매는 것은 어쩌면 어른에게도 벅찰 수 있기에 도서관에서 졸든, 장난을 치든, 멍을 때리든 한 글자라도 읽고 돌아가는 아이들의 모습이 참 기특합니다.
언제는 한 아이가 책 읽는 게 재미없다며 투덜거리더니, 의자에 앉자마자 곧바로 잠들어 버렸습니다. 속으로는 “아, 저 친구는 이제 도서관에 자주 오지 않겠구나” 하고 생각했지요. 그런데 의외였습니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그 아이는 어김없이 도서관 문을 열고 들어와 책을 펼쳤습니다. 그리고 또 잠이 들었습니다. 그 모습이 참 이상했습니다. 흥미를 잃었다고 말한 아이가, 왜 이렇게 꾸준히 책을 읽으러(그리고 어쩌면 자러) 오는 걸까? 책장을 넘기다 졸음을 참지 못해 꾸벅꾸벅 고개를 떨구면서도, 매일 도서관에 발걸음을 옮기는 그 끈기가 신기했고, 왠지 모르게 가슴이 따뜻해졌습니다. 어쩌면 책 읽기는 그렇게 완벽할 필요가 없는 일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단 몇 쪽만 읽어도, 심지어 매번 잠들어 버린다 해도, 책과 만나는 그 짧은 시간 속에서 무언가가 조용히 쌓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는 그 아이를 보며, 독서는 성과나 속도가 아니라 작은 습관이라는 것을 다시금 배웠습니다.
일한지 며칠 되지 않았을 때 한 선생님께서 “도서관에서는 아이들이 말을 참 잘 듣는다”고 그러셨습니다. 처음에는 왜지? 싶었습니다. 저였다면 답답하고 숨막히는, 당장이라도 공부해야만 할 것 같은 곳으로 인식되어 싫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그런데 한 달 정도 일해보니 아이들이 이곳을 좋아하는 이유를 조금이나마 알 것 같습니다. 겹겹의 책장 속에서 우리 모두 한 명의 “작가”라는 정체성을 부여받고 서열이나 눈치 대신 각자의 취향과 호기심이 존중받는 곳. 책을 고르는 기준은 외부의 힘이나 강요가 아닌 온전한 본인의 관심이고, 자리를 차지하는 순서 또한 서열이 아닌 우연입니다. 그래서 도서관 안에서만큼은 아이들이 잠시나마 평등해지는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앞으로도 도서관을 나서는 아이들의 얼굴에 잠깐의 여유와 안도감이 더욱 깊이 새겨지기를 바랍니다. 그것이 단순히 ‘책을 읽었다’는 흔적에 그치지 않고, 잠시나마 누구와도 비교되지 않으며 오롯이 자기 자신으로 머물렀던 시간의 증거로 남았으면 합니다. 그리고 그 평온이 아이들 마음속에서 조용히 자라, 언젠가는 자신을 믿고 세상을 마주할 힘으로 이어지기를 바랍니다. (글 : 윤혜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