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널 서른아홉번째
11월 26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직면] 시리즈 첫 번째
“세품아 아이들은 자신이 한 범죄에 대해 반성을 하나요? 그런 프로그램이 있나요?”
세품아의 변화에 주목해 주시는 분들의 질문입니다. 세품아에 들어와서 눈매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며, 행동이 바꿔가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을 향해 드라마틱한 기대를 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뼈져린 반성을 한 후, 자신의 꿈을 향해 성실히 살아가는 청소년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세품아에 들어왔지만, 이곳에서 역시 새로운 모습의 피해자, 가해자가 만들어집니다. 조금 느리고 힘이 약해 보이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건 이들의 기준에 비겁한 일이기 보다 재밌는 일입니다. L은 학교를 자퇴한 후 1년 동안 자기방에 틀여박혀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과 행동이 조금 느리고, 자기 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그는 혼자 이유없이 피식 웃는 모습을 종종 보였습니다. 자신과 조금 다르고, 힘이 없어보이는 L을 보며 아이들은 한마디씩 참견질을 하며 비아냥 대는 말을 건냅니다. 이런 행동에 대해 교사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쟤가 시비를 걸어요.’ ‘절 보고 실실 쪼개요.’ ‘절 비웃는 거 같아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분노와 폭력에는 늘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앞에 ‘분노 유발자’ ‘폭력 유발자’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요.
2년 전 세품아를 거쳐간 J군은 한 편의점에서 여러번 절도를 하여 편의점 측에 100여 만원의 손해를 입혔습니다. 그는 세품아 생활 중 자신의 물품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편지지가 없어지자, 교사를 찾아야 도둑놈을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일이 늦어지자, 왜 선생님들이 자신의 일을 해결해 주지 않냐며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는J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편지지 몇장을 잃어버린 너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100여 만원의 손실을 본 편의점 사장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골똘히 생각을 하던 J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100만원이라도 내가 그 사람이 아니니깐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편지지 몇 장이라도 나는 내 마음을 아니깐 억울한거 아니예요?” ‘공감’이라는 단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로남불’의 극치를 날마다 경험하면서 때로는 ‘교사’라는 역할을 잊은 채 분노할 때도 많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아이들의 현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볼 때마다 늘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아이들의 위험천만한 감정과 생각에 다가가면 갈수록 부담스런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스네일랩 교육과정의 첫 단계인 ‘지움학교’는 ‘멈추고 다시 움을 틔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쩌면 이들은 안타까운 괴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곳’ 이 어쩌면 이들의 삶을 멈추고 다시 움을 틔우게 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부담스런 책임감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입소상담시 자신을 설명하는 아이들의 표현을 들어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범죄를 하고 들어온 곳에서의 첫번째 상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착한 사람’ ’재밌는 사람‘이라는 답변이 많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타인의 작은 말과 행동에 분노와 억울함을 느낍니다. 타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이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는 인색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는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나와 타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존중과 약속, 그리고 규칙과 법은 이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가 되든 말든요. 이런 친구들에게 행동의 결과를 인식하고 타인과 화해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앞서 언급했듯, 더 이상의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브레이크, ’지금 바로 이 곳‘인 세품아 이야기는 다음 저널을 통해 계속됩니다. (글 : 임수미)
저널 서른아홉번째
11월 26일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
: [직면] 시리즈 첫 번째
세품아의 변화에 주목해 주시는 분들의 질문입니다. 세품아에 들어와서 눈매가 바뀌고 언어가 바뀌며, 행동이 바꿔가는 아이들을 보며 우리는 그들을 향해 드라마틱한 기대를 합니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뼈져린 반성을 한 후, 자신의 꿈을 향해 성실히 살아가는 청소년들!’
그러나 현실은 그리 호락호락하지만은 않습니다.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고 세품아에 들어왔지만, 이곳에서 역시 새로운 모습의 피해자, 가해자가 만들어집니다. 조금 느리고 힘이 약해 보이는 아이들을 괴롭히는 건 이들의 기준에 비겁한 일이기 보다 재밌는 일입니다. L은 학교를 자퇴한 후 1년 동안 자기방에 틀여박혀 생활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말과 행동이 조금 느리고, 자기 만의 세상에 빠져있는 그는 혼자 이유없이 피식 웃는 모습을 종종 보였습니다. 자신과 조금 다르고, 힘이 없어보이는 L을 보며 아이들은 한마디씩 참견질을 하며 비아냥 대는 말을 건냅니다. 이런 행동에 대해 교사가 이야기를 하면 아이들은 하나같이 억울함을 호소합니다. ‘쟤가 시비를 걸어요.’ ‘절 보고 실실 쪼개요.’ ‘절 비웃는 거 같아요.’ 가해자의 위치에 선 아이들은 하나같이 자신의 분노와 폭력에는 늘 이유가 있다고 말합니다. 자신의 앞에 ‘분노 유발자’ ‘폭력 유발자’가 있었기 때문에 내가 그렇게 할 수 밖에 없었다고요.
2년 전 세품아를 거쳐간 J군은 한 편의점에서 여러번 절도를 하여 편의점 측에 100여 만원의 손해를 입혔습니다. 그는 세품아 생활 중 자신의 물품 보관함에 넣어두었던 편지지가 없어지자, 교사를 찾아야 도둑놈을 잡아 달라고 했습니다. 일이 늦어지자, 왜 선생님들이 자신의 일을 해결해 주지 않냐며 분노하기 시작했습니다. 시간이 지나고 저는J에게 이런 질문을 했습니다. “편지지 몇장을 잃어버린 너도 이렇게 화가 나는데 100여 만원의 손실을 본 편의점 사장님은 얼마나 힘드셨을까?” 골똘히 생각을 하던 J는 이런 대답을 했습니다. “100만원이라도 내가 그 사람이 아니니깐 그 사람의 마음을 모르고 편지지 몇 장이라도 나는 내 마음을 아니깐 억울한거 아니예요?” ‘공감’이라는 단어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것 같은 순간이었습니다. 어디서 부터 잘못된 것일까?
‘내로남불’의 극치를 날마다 경험하면서 때로는 ‘교사’라는 역할을 잊은 채 분노할 때도 많습니다. ‘해도 해도 너무하다…’ 아이들의 현실, 그들의 말과 행동을 볼 때마다 늘 놀라움의 연속이지만, 아이들의 위험천만한 감정과 생각에 다가가면 갈수록 부담스런 책임감 같은 것이 생겨납니다.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이들은 어떤 어른으로 성장할까? 스네일랩 교육과정의 첫 단계인 ‘지움학교’는 ‘멈추고 다시 움을 틔운다’는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과거의 감정과 생각, 그리고 행동을 여기서 멈추지 않는다면 어쩌면 이들은 안타까운 괴물로 성장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지금 바로 이 곳’ 이 어쩌면 이들의 삶을 멈추고 다시 움을 틔우게 하는 마지막 기회가 될지 모른다는 생각이 부담스런 책임감의 이유이기도 합니다.
입소상담시 자신을 설명하는 아이들의 표현을 들어보면, 놀랄 때가 많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람인가요?’라는 질문에 (범죄를 하고 들어온 곳에서의 첫번째 상담임에도 불구하고) 자신은 ‘착한 사람’ ’재밌는 사람‘이라는 답변이 많습니다. 자신의 행동이 자기 자신에 대한 이해에 아무런 영향도 미치지 않았습니다. 또한 타인의 작은 말과 행동에 분노와 억울함을 느낍니다. 타인이 자신을 무시한다고 말합니다. 타인이 나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는 인색하지만, 내가 타인에게 하는 말과 행동에는 한없이 너그럽습니다. 나와 타인의 안전을 지켜주는 존중과 약속, 그리고 규칙과 법은 이들에게 더 이상 중요한 요소가 아닙니다. 이들에게 중요한 건,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는 것, 내가 하고 싶은 것을 마음껏 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타인에게 피해가 되든 말든요. 이런 친구들에게 행동의 결과를 인식하고 타인과 화해하라고 말하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요?
앞서 언급했듯, 더 이상의 괴물이 되지 않기 위한 마지막 브레이크, ’지금 바로 이 곳‘인 세품아 이야기는 다음 저널을 통해 계속됩니다.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