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마흔다섯번째] 16살 종범이 이야기

관리자
2025-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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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마흔다섯번째  

3월 4일  




”도움이 필요한 아이였습니다. 

그러나 주변에서 그것을 알아채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16살 종범이 이야기)





   타기관에서 처분변경으로 세품아에 오게 된 종범이, 평소에 알고 지내던 친구 A를 세품아에서 마주치면서 불안함이 앞섭니다. 그리고 곧 그 불안함은 현실로 드러났습니다. “종범이 쟤, 이상한 새끼야. 여자애들이랑만 다니거든.” 종범이의 발작 버튼에 불을 붙여버린 이 한마디로 그는 싸움을 중재하는 교사의 개입도 무시한 채 흥분하며 난동을 부립니다. 타기관에서도 동일한 일이 벌어 졌었다는 걸 뒤늦게 알게 되었습니다. 세품아 생활 두 달 후, 많이 안정이 된 종범이에게서 속마음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뒤에서 저런 얘기를 하는게 힘들어요. 그런 얘기를 통해 나를 이상한 사람으로 볼까봐 너무 불안하고요. 근데 지금은 괜찮아요. 세품아 사람들이 이제는 저를 아는 거 같아서 마음이 편해졌어요.” 그렇다면 종범이는 어떤 사람으로 보여지고 싶었을까요? “선생님 말씀 잘 듣는 모범적인 사람이요.” 어색하게 웃는 종범이의 모습에서 폭력적인 행동과는 다르게 어린 아이같다는 인상을 받았습니다. 


”내가 좋아하는 건 먹는 것이고 싫어하는 건 살찌는 거예요. 잘하는 건 노는 것이고, 못 하는 건 살빼기입니다.“ 입소 상담시 종범이가 했던 이야기인데요. 실제로 종범이는 웩슬러 지능검사 결과 IQ 74로 학습에도 어려움이 많았습니다. ”수업 시간에 태도는 굉장히 좋은데 조금 어려운 문제가 나오면 소극적으로 변해요. 학습 수준은 초등학교 4학년 수준으로 A반에서 공부를 하고 있는데요. 월반이 쉽지가 않네요. 다른 친구들 보다 속도가 느리긴 합니다. 다른 친구들이 1~2번 설명하면 이해하는 것을 종범이는 3~4번을 설명해야 겨우 알아듣는 정도예요.” (기초학습 담당교사)


종범이는 무인 아이스크림 매장과 다이소에서 물품을 절도한 것으로 세품아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엄마는 기억에 없어요. 어릴 때 부모님이 이혼하시고 할머니, 할아버지가 저를 키웠어요. 유치원 다닐때 부터 친구들과 많이 싸우고 선생님한테 혼도 많이 났어요. 친구들이 ’엄마없는 애‘라고 해 화가 나서 욕을 한건데 선생님은 내 말과 행동만 보고 나를 혼내셨어요.“ (종범이) ”내성적이고 마음이 약한 아이예요. 친구들을 좋아하는데 표현을 잘 못한거 같아요. 툭툭 치기도 했는데 얘가 덩치가 크다 보니깐 괴롭히는 것 처럼 보였나봐요.“ 어릴때 부터 종범이를 키워오신 할머니의 이야기 입니다. 자신을 놀리는 친구들에게 화가 났고 그 화를 참지 못한 종범이는 수업에도 들어가지 않고 교사의 지시에도 순응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패턴은 반복되어 유치원에서 부터 중학교까지 이어지게 되었고, 이해할 수 없는 그의 행동과 그에 따른 주변인들의 반응은 종범이가 분노를 참지 못하는 폭력적인 아이라는 인식의 마침표를 찍기에 충분했습니다. 실제로 초등학교 5학년 담임선생님의 권유로 심리검사를 받고 분노조절장애, 우울증, ADHD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루가 멀다하고 학교에서 연락이 오다보니 화가 난 아버지는 전기 파리채가 산산조각 날 정도로 종범이를 때리셨고, 아버지의 폭력이 중1때 까지 계속되자, 종범이는 아버지를 아동학대로 신고하게 되었습니다. ”우리 종범이가 교만해요. 스스로가 위에 있는 것처럼 행동해요. 제가 어른에게 순종하고 공경하라고 가르치는데도, 종범이는 반대로만 행동해요. 어른들을 무시하는 것 같아요.“ 자신이 억울할 때 교사에게 반항하며 난동을 부리는 손주의 행동을 보고 할머니는 이런 생각을 하시게 되었습니다. 어릴때 부터 가장 가까이에서 종범이를 키워주신 할머니 조차도 종범이의 행동을 이해하기 어려웠습니다. 


세품아에서 몇 달을 함께 지내다보니 종범이가 가장 많이 느꼈던 감정이 ’억울함‘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가정과 유치원, 그리고 학교에서 행했던 종범이의 말과 행동은 용납하기 어려운 것들입니다. 그러나 확실한 건, 어린 종범이는 ’느린 학습자‘로서 어른들의 도움이 절실한 아이였다는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그의 주변에서는 그의 어려움을 알아채고 도움을 줄 수 있는 어른이 아무도 없었습니다. 그는 할머니의 바람대로 어른들의 말을 잘 듣는 모범적인 사람이 되고 싶었지만 그 바람과는 달리 그의 미숙한 행동은 그를 문제 덩어리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무엇이 문제인지도 알지 못한 채 억움함만을 안고 범죄를 경험한 청소년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그가 왜 화가 났는지, 화가 날 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 함께 놀고 싶은 친구에게는 어떻게 다가가야 하는지 누군가가 조금 더 일찍 알려 주었다면, 그가 교만한 것이 아니라 미숙한 것이었다는 것을 누군가가 조금 더 일찍 알아봐 주었다면 종범이의 인생은 어땠을까? 생각해 보게 됩니다.  


얼마 전 종범이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중학교 3학년, 새학기를 맞이한 종범이가 학교 생활을 잘 할 수 있을지 여전히 궁금합니다. (글 : 임 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