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널 마흔여섯번째
3월 18일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를
자신이 꼭 빼 닮았다는 걸 재민이는 알고 있을까요?"
(19살 재민이 이야기)
동생들을 잘 돌보는 맏이는 부모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듯 세품아에서도 나이 많은 형들이 선생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이 동그랗고 인상이 편안해 보이는 재민이는 지움관에서 동생들을 잘 돌보는 듬직한 형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 덕분에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재민이는 관찰력과 표현력도 뛰어납니다. “A 선생님은 질문만 하시는 스타일, B 선생님은 질문 후에 노트북을 쳐다보시며 대답을 미리 준비하시는 스타일, C 선생님은 공과 사가 확실한 스타일인 거 같아요. A 선생님은 상처를 잘 받으실 거 같고 B 선생님은 끼가 많으세요.” 수업에 들어오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행동특성을 단번에 파악해 줄줄이 설명해 내기도 합니다.
든든하고 유쾌한 녀석이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교사가 보기에 안타까운 구석도 있습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슨 일이 생기면 남 탓이나 변명이 많아요. 자신의 실수를 직면하기 어려워해요.”(생활담당 교사) 사실 남 탓이나 변명은 인간 모두의 특성이긴 할 텐데요. 재민이는 정도가 좀 심합니다. 자신의 일탈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때도 아버지의 간섭과 폭력 행동 때문이라고 했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관심할 때는 자신의 일탈 행동이 덜했다고 말합니다. “중 1때 담배를 처음 폈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는데 할머니랑 아빠가 자주 하시던 말이 생각났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핀다’ 그래서 저도 한번 피워봤죠.” “중 3때 친구가 ‘스트레스받을 때 자해하면 정신이 집중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말을 했어요. 그 말 듣고 처음 손목에 커터칼을 그었어요. 그 후에도 몇 번 더 했고요.” 자신의 흡연과 자해경력을 설명할 때 그가 언급한 내용입니다.
‘핑계가 좋다’라는 생각이 드실 텐데요. 사실 재민이네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재민이의 부모님은 그가 3살 때 별거를 시작하셨고, 재민이는 여동생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만 했습니다. 두 남매의 양육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긴 철없는 아버지는 남매를 거의 돌보지 않다가 재민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5살 때부터 혼자 밥 짓는 영상을 보면서 밥 짓는 걸 배웠어요. 3살 때 부모님이 싸우시고 엄마가 나가시는 장면이 기억나요. 그 이후로 나도 언젠간 혼자가 될 거란 생각을 늘 해요. 그래서 나중에 힘들어지지 않으려고 미리 준비했어요.”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재민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아빠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한 아버지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요. 재민이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더 삐뚤어져 나갔고 본격적으로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재민이는 오토바이와 관련된 범죄로 재판을 받고 세품아에 오게 되었습니다.
재민이가 아버지의 폭력성만을 닮은 것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나쁜 건 아니고요…. 택시 타고 그냥 도망가는 것, 채팅창에서 욕 좀 해서 언어폭력으로 신고당한 것, 기프티콘 사기 친 것등 자잘한 사건들이었어요.” 재민이가 중학교 때 어땠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게 답변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재민이가 입소 상담시 자신의 범죄와 처분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이와 유사합니다. “6호 위탁받았을 때 너무 화가 났어요. 나보다 더 심한 범죄를 한 친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어요. 내가 한 건 별거 아닌데 내가 왜 위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화나요.” 사실 이런 얘기는 6호 위탁을 받은 친구들이 대부분 하는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재민이는 세품아 생활 중에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선생님들이 훈육을 할라치면 ‘내가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했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재민이를 상담한 한 심리전문가는 ‘부모의 이혼, 경제적 어려움, 부의 학대 등이 극도의 불안감을 가중함으로… 불안, 부정적인 자기 인식등 자아상이 건강하지 못하고 문제 상황에서 미성숙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고 과정의 미숙함이 발견되는… 결국 내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일탈 행동으로 해소하며…’ 란 기록을 남겼습니다.
재민이는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아니 무서워합니다. 자신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을 때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마흔이 된 아버지는 다 큰 아들에게 이제라도 다가가 보려고 노력하지만 재민이는 그런 아버지에게 화가 납니다. 아니 혼란스럽습니다. ‘이제 와서?? 다 컸는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를 자신이 꼭 빼닮았다는 걸 재민이는 알고 있을까요? 세품아 친구들 중에는 흔치 않게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학습 수준을 가지고 있는 재민이는 올해 4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기관 내에서 사건을 저질러 현재는 판사님의 재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 재민이는 검정고시를 볼 수 있을까요? 그에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요? (글 : 임 수 미)
저널 마흔여섯번째
3월 18일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를
자신이 꼭 빼 닮았다는 걸 재민이는 알고 있을까요?"
(19살 재민이 이야기)
동생들을 잘 돌보는 맏이는 부모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듯 세품아에서도 나이 많은 형들이 선생님의 든든한 조력자가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눈이 동그랗고 인상이 편안해 보이는 재민이는 지움관에서 동생들을 잘 돌보는 듬직한 형입니다. 어릴 때 할머니 덕분에 책을 많이 읽었다는 재민이는 관찰력과 표현력도 뛰어납니다. “A 선생님은 질문만 하시는 스타일, B 선생님은 질문 후에 노트북을 쳐다보시며 대답을 미리 준비하시는 스타일, C 선생님은 공과 사가 확실한 스타일인 거 같아요. A 선생님은 상처를 잘 받으실 거 같고 B 선생님은 끼가 많으세요.” 수업에 들어오시는 여러 선생님들의 행동특성을 단번에 파악해 줄줄이 설명해 내기도 합니다.
든든하고 유쾌한 녀석이기도 하지만 함께 하는 교사가 보기에 안타까운 구석도 있습니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자꾸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합니다. 그래서 그런지 무슨 일이 생기면 남 탓이나 변명이 많아요. 자신의 실수를 직면하기 어려워해요.”(생활담당 교사) 사실 남 탓이나 변명은 인간 모두의 특성이긴 할 텐데요. 재민이는 정도가 좀 심합니다. 자신의 일탈 행동에 대한 이유를 설명할 때도 아버지의 간섭과 폭력 행동 때문이라고 했고 아버지가 자신에게 무관심할 때는 자신의 일탈 행동이 덜했다고 말합니다. “중 1때 담배를 처음 폈어요. 너무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있었는데 할머니랑 아빠가 자주 하시던 말이 생각났어요. ‘스트레스 때문에 담배핀다’ 그래서 저도 한번 피워봤죠.” “중 3때 친구가 ‘스트레스받을 때 자해하면 정신이 집중되고 스트레스가 해소된다’는 말을 했어요. 그 말 듣고 처음 손목에 커터칼을 그었어요. 그 후에도 몇 번 더 했고요.” 자신의 흡연과 자해경력을 설명할 때 그가 언급한 내용입니다.
‘핑계가 좋다’라는 생각이 드실 텐데요. 사실 재민이네 환경이 그리 좋지 않았던 건 사실입니다. 어린 나이에 결혼한 재민이의 부모님은 그가 3살 때 별거를 시작하셨고, 재민이는 여동생과 함께 할머니 손에서 자라야만 했습니다. 두 남매의 양육을 자신의 어머니에게 맡긴 철없는 아버지는 남매를 거의 돌보지 않다가 재민이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면서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5살 때부터 혼자 밥 짓는 영상을 보면서 밥 짓는 걸 배웠어요. 3살 때 부모님이 싸우시고 엄마가 나가시는 장면이 기억나요. 그 이후로 나도 언젠간 혼자가 될 거란 생각을 늘 해요. 그래서 나중에 힘들어지지 않으려고 미리 준비했어요.” 부모처럼 살고 싶지 않았던 재민이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자신이 그렇게 싫어하는 아빠처럼 폭력적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아들의 행동이 못마땅한 아버지는 훈육이라는 이름으로 아이에게 다시 폭력을 행사하기 시작했고요. 재민이는 아버지를 원망하며 더 삐뚤어져 나갔고 본격적으로 범죄의 길에 들어서게 되었습니다. 재민이는 오토바이와 관련된 범죄로 재판을 받고 세품아에 오게 되었습니다.
재민이가 아버지의 폭력성만을 닮은 것은 아닌 듯 보였습니다. “그렇게 나쁜 건 아니고요…. 택시 타고 그냥 도망가는 것, 채팅창에서 욕 좀 해서 언어폭력으로 신고당한 것, 기프티콘 사기 친 것등 자잘한 사건들이었어요.” 재민이가 중학교 때 어땠냐는 질문에 아버지가 별거 아니라는 듯 대수롭게 답변을 했습니다. 흥미로운 건, 재민이가 입소 상담시 자신의 범죄와 처분에 대해 언급한 내용도 이와 유사합니다. “6호 위탁받았을 때 너무 화가 났어요. 나보다 더 심한 범죄를 한 친구들은 다 집으로 돌아갔어요. 내가 한 건 별거 아닌데 내가 왜 위탁이 되어야 하는지 이해가 안 가요. 화나요.” 사실 이런 얘기는 6호 위탁을 받은 친구들이 대부분 하는 말이긴 합니다. 그러나 재민이는 세품아 생활 중에도 자신이 한 행동에 대해 선생님들이 훈육을 할라치면 ‘내가 뭐 그렇게 큰 잘못을 했냐?’고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는 경우가 종종 있었습니다. 재민이를 상담한 한 심리전문가는 ‘부모의 이혼, 경제적 어려움, 부의 학대 등이 극도의 불안감을 가중함으로… 불안, 부정적인 자기 인식등 자아상이 건강하지 못하고 문제 상황에서 미성숙한 방식으로 대처하는 사고 과정의 미숙함이 발견되는… 결국 내 외부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일탈 행동으로 해소하며…’ 란 기록을 남겼습니다.
재민이는 아버지를 싫어합니다. 아니 무서워합니다. 자신들을 돌보지 않았을 뿐 아니라 피가 날 정도로 자신을 때린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마흔이 된 아버지는 다 큰 아들에게 이제라도 다가가 보려고 노력하지만 재민이는 그런 아버지에게 화가 납니다. 아니 혼란스럽습니다. ‘이제 와서?? 다 컸는데??’ 자신이 이해할 수 없는 사람, 그렇게 싫어하는 아버지를 자신이 꼭 빼닮았다는 걸 재민이는 알고 있을까요? 세품아 친구들 중에는 흔치 않게 고등학교 1학년 정도의 학습 수준을 가지고 있는 재민이는 올해 4월에 있을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그러던 중 기관 내에서 사건을 저질러 현재는 판사님의 재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중이고요. 재민이는 검정고시를 볼 수 있을까요? 그에게 새로운 시작이 가능할까요? (글 : 임 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