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널 예순한번째
11월 25일(화)
"아이들과 지내며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지움학교의 ‘츤데레 형아’ 병준쌤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세품아 4개월 차 지움학교 교사 김병준(28)입니다. 제가 세품아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 삶의 궤적과 세품아의 사명이 닮아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낯선 환경에서 방황하며 ‘이방인’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 처음 성취를 경험했고, “너도 할 수 있다”는 학원 선생님의 한마디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누군가의 삶에 버팀목이 되는 어른,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건넬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반복된 실패와 현실의 벽 앞에서 제 꿈은 흔들렸습니다. 그 과정은 제게 어두운 터널과 같았지만, 동시에 “내가 진짜 되고 싶었던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목표보다 ‘한 아이를 살리는 어른’에 대한 갈망이 제 안에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세품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었고, 하이머스타드 영상을 보고 ‘저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강한 울림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임용을 포기하는 것이 실패라고 여겨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철저히 무너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제게 비춰주고 계시던 방향이 세품아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선이 완전히 세품아로 돌아왔고, 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우연히 걸었던 전화 한 통이 지금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입사 전에 기대했던 모습과 실제 세품아에서 경험하는 현실이 다르냐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품아에서의 하루하루가 진심으로 제 천직이라고 느껴집니다. 아이들은 제가 상상했던 그대로였고, 때론 사고를 치고 말썽도 부리지만 그 모든 순간이 제게는 살아 있는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지내며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장난기 많고, 아이들에게는 츤데레처럼 괜히 틱틱거리다가도 금세 따뜻함이 드러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제 모습이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걸 보며 스스로 “이게 나구나” 하고 미소 짓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또 하나 예상보다 더 좋았던 점은, 저는 반복되는 일상을 금방 지루해하는 타입인데, 세품아의 하루는 정말 예측할 수 없습니다. 천방지축 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고, 매일이 새롭고 생동감 있습니다.
입사 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순간은 제가 처음으로 법원 인솔부터 교육까지 전 과정을 맡았던 진수와의 경험입니다. 첫 인솔이라 혹시 모를 난동이나 반항을 걱정하며 긴장했지만, 그날 제가 본 진수의 모습은 걱정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로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사회처분이 아닌 6호 처분을 받은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재판에서 언급된 흉기 소지가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항고하고 싶다. 너무 억울하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엔 흔히 재판 후에 나오는 불만 정도로 여겨 흘려들었습니다. 실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높지 않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아이의 적응을 위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수의 가정환경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아이는 억울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의 편이 되어줄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누군가가 “네 말, 내가 끝까지 들을게.”라고 말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의 억울함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마음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경험은 제가 세품아에서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 되새기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 너머에 있는 사연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진수를 통해 배웠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 꿈을 찾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준 한 사람은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그런 어른을 만났기에 교사의 길을 꿈꾸었고, 지금도 그 역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신 은사는 제가 직접 경험한 변화의 기적을 아이들에게 다시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제 삶이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고 힘든 아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 자신을 의심하게 될 때마다, 너를 믿는 사람을 떠올려도 좋아.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너 자신을 믿어야 해. 너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
지식을 전하는 사람을 넘어 아이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어른. 그것이 제가 세품아에서 추구하는 교육의 모습입니다. 세품아에서 보낸 3개월은 제게 단순한 ‘적응의 시기’가 아니라, 제가 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지, 왜 이 길이 제 삶의 방향인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글: 김병준)
저널 예순한번째
11월 25일(화)
"아이들과 지내며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지움학교의 ‘츤데레 형아’ 병준쌤 이야기)
안녕하세요! 저는 세품아 4개월 차 지움학교 교사 김병준(28)입니다. 제가 세품아에 입사하게 된 가장 큰 이유는 제 삶의 궤적과 세품아의 사명이 닮아있다는 확신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저는 아버지의 사업 실패로 낯선 환경에서 방황하며 ‘이방인’처럼 지냈습니다. 그러다 중학교 시절 처음 성취를 경험했고, “너도 할 수 있다”는 학원 선생님의 한마디가 제 인생의 방향을 바꾸었습니다. 그때부터 저는 누군가의 삶에 버팀목이 되는 어른, 아이들에게 희망의 빛을 건넬 수 있는 교사가 되고 싶었습니다. 그러나 임용시험을 준비하며 반복된 실패와 현실의 벽 앞에서 제 꿈은 흔들렸습니다. 그 과정은 제게 어두운 터널과 같았지만, 동시에 “내가 진짜 되고 싶었던 교사는 어떤 사람인가”를 깊이 고민하게 한 시간이기도 했습니다. 교육자로서의 목표보다 ‘한 아이를 살리는 어른’에 대한 갈망이 제 안에서 더 선명해졌습니다.
세품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2년 전이었고, 하이머스타드 영상을 보고 ‘저게 내가 하고 싶은 일’이라는 강한 울림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당시엔 임용을 포기하는 것이 실패라고 여겨 발걸음을 돌릴 수 없었습니다. 결국 철저히 무너진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하나님이 오래전부터 제게 비춰주고 계시던 방향이 세품아였다는 걸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시선이 완전히 세품아로 돌아왔고, 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우연히 걸었던 전화 한 통이 지금의 인연으로 이어졌습니다.
입사 전에 기대했던 모습과 실제 세품아에서 경험하는 현실이 다르냐는 질문을 자주 듣습니다. 하지만 저는 세품아에서의 하루하루가 진심으로 제 천직이라고 느껴집니다. 아이들은 제가 상상했던 그대로였고, 때론 사고를 치고 말썽도 부리지만 그 모든 순간이 제게는 살아 있는 배움입니다. 무엇보다 아이들과 지내며 제가 좋아하는 제 모습을 더 많이 발견한다는 점이 가장 좋습니다. 저는 장난기 많고, 아이들에게는 츤데레처럼 괜히 틱틱거리다가도 금세 따뜻함이 드러나는 사람이더라고요. 그런 제 모습이 아이들 사이에서 자연스럽게 드러나고, 그걸 보며 스스로 “이게 나구나” 하고 미소 짓는 순간들이 있습니다. 또 하나 예상보다 더 좋았던 점은, 저는 반복되는 일상을 금방 지루해하는 타입인데, 세품아의 하루는 정말 예측할 수 없습니다. 천방지축 같은 아이들과 함께하다 보니 매너리즘에 빠질 틈이 없고, 매일이 새롭고 생동감 있습니다.
입사 후 가장 선명하게 남아 있는 순간은 제가 처음으로 법원 인솔부터 교육까지 전 과정을 맡았던 진수와의 경험입니다. 첫 인솔이라 혹시 모를 난동이나 반항을 걱정하며 긴장했지만, 그날 제가 본 진수의 모습은 걱정과는 완전히 달랐습니다. 그는 억울함과 두려움이 뒤섞인 얼굴로 조용히 울고 있었습니다. 사회처분이 아닌 6호 처분을 받은 것에 큰 충격을 받은 상태였고, 재판에서 언급된 흉기 소지가 판결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믿고 있었습니다. “항고하고 싶다. 너무 억울하다.”고 말하는 그의 이야기를 처음엔 흔히 재판 후에 나오는 불만 정도로 여겨 흘려들었습니다. 실제로 받아들여질 가능성도 높지 않으니, 조용히 넘어가는 것이 아이의 적응을 위해 낫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진수의 가정환경 이야기를 듣는 순간, 제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습니다. 이 아이는 억울한 상황에 놓였을 때 자신의 편이 되어줄 어른이 단 한 명도 없었던 아이였습니다. 누군가가 “네 말, 내가 끝까지 들을게.”라고 말해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는 사실을 깨닫자, 그의 억울함은 단순한 반항이 아니라 살려달라는 마음의 신호처럼 느껴졌습니다. 그 경험은 제가 세품아에서 왜 이 자리에 서 있어야 하는지 되새기게 했습니다. 아이들의 말과 행동 너머에 있는 사연을 더 깊이 들여다보고, 그 마음을 끝까지 들어주는 것. 그것이 내가 이곳에서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역할이라는 것을 진수를 통해 배웠습니다.
저는 누구에게나 인생의 어느 순간 꿈을 찾아주고 용기를 북돋아준 한 사람은 있다고 믿습니다. 저도 그런 어른을 만났기에 교사의 길을 꿈꾸었고, 지금도 그 역할을 삶의 중심에 두고 있습니다. 저에게 주신 은사는 제가 직접 경험한 변화의 기적을 아이들에게 다시 전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군가의 말 한마디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수 있다는 사실을 제 삶이 증명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아프고 힘든 아이들에게 그늘이 되어주고, 다시 일어설 힘을 건네는 어른이 되고 싶습니다.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주고 싶습니다.
“너 자신을 의심하게 될 때마다, 너를 믿는 사람을 떠올려도 좋아. 노력은 절대 헛되지 않고, 마지막 순간까지 너 자신을 믿어야 해. 너는 할 수 있는 사람이야. 지금도 그렇고 앞으로도 그래.”
지식을 전하는 사람을 넘어 아이들의 마음을 일으켜 세우는 어른. 그것이 제가 세품아에서 추구하는 교육의 모습입니다. 세품아에서 보낸 3개월은 제게 단순한 ‘적응의 시기’가 아니라, 제가 왜 아이들과 함께해야 하는지, 왜 이 길이 제 삶의 방향인지 다시 확인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글: 김병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