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저널예순세번째
12월 30일(화)
“음악을 하는 나를 볼 때
‘꽤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세품아 드럼 강사 영배쌤 이야기)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골 좀 찬다” 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한 소년은, 전문 축구부가 있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로 스카웃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그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그는 오롯이 실력만으로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는 곧, 실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매달 부담해야 하는 훈련비와 전지훈련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를 시기하던 학부형들의 시선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어느 날, 비어 있는 자신의 락커를 마주한 순간, 그는 직감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겠구나.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선배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겹치며 그는 공식적으로 축구부에서 퇴출되었고, 강제 전학 조치로 고향인 부천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의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아주 어릴 때 인형뽑기 기계에 만 원을 넣어두고, 뽑기에 정신이 팔린 나를 두고 사라져 버렸거든요. 할머니랑 아버지, 누나랑 살았어요. 아버지는 노동일을 하셨던 것 같은데,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술을 많이 드셨어요. 지긋하게 가난했어요."
가족과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그의 동력이 되었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은 그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싸움을 일삼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본드 중독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와 함께 비행을 저질렸던 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이 그가 처음 세품아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초기 세품아가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죠.)
“나한테 뭘 요구하더라고요. ‘드럼 배워볼래?’ 누군가 나한테 뭔가를 해보자고 요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처음부터 드럼이 재미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뭐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고 믿는 그는, 방학이 되자 하루 종일 드럼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갑자기 개근상을 한번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노력으로 뭔가를 바꿔보고 싶었달까요. 그래서 지각도 안 하고 학교를 정말 열심히 나갔어요.”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학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그의 변화에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공연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실력은 말도 안 됐죠. 근데 합주를 하면서, 공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그 순간… 말 안 해도 눈으로 다 알 수 있잖아요. ‘아, 이거 진짜 뽕 가는데…’ 평생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어요. 본드를 이긴 유일한 도파민이었죠.”
그 이후 그는 본드를 한 번에 끊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줄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본드를 하면 그 ‘좋은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 끊어야 할 이유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이 경험을 토대로 세품아의 교육 철학 ‘건강하지 못한 중독은 건강한 중독으로 치료한다’ 는 문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하다 보니까 이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하는 나를 볼 때 ‘꽤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들도 그렇게 봐줬고요. 예전엔 그냥 쌩양아치였는데요.” 그는 지금, 드럼 강사이자 지움관 생활교사로 세품아와 함께하고 있는 장영배 선생님(31)입니다.
“영배쌤은 좀 달라요. 쌤들이 우리를 이해한다고는 말하는데, 실제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근데 영배쌤은 진짜 우리를 이해해요. 아마도… 자기 자신도 우리랑 비슷한 삶을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지움학교 학생)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다들 진짜 괜찮은 아이들인데 왜 이런 못난 생각과 행동을 할까 싶어서요. 그래서 더 혼도 내고, 더 얘기도 하려고 해요. 세상에 변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저를 보세요. 결국은 곁에 누가 있느냐의 문제더라고요. 행동과 상관없이 끝까지 믿고 옆에 있어 줄 어른이 필요해요. 세품아가 저에게 그랬던 것 처럼요.”
원망은 어릴 때나 하는 거라며 웃어 넘기지만, 그의 현재 삶 역시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평일에는 학원 강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세품아에서 근무하며 경제적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동시에, 누나와 함께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최근 아버지의 병환으로 큰 병원비가 들었을 때도 그는 “괜찮다, 다 해낼 수 있다”며 오히려 주변을 안심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자기 자녀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앞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스스로 변할 수 없다고 믿는 세품아 아이들에게는 ‘지금의 내가 희망’이 되었으면 해요.”
풍요롭다고 말할 수는 없고,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현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발을 딛고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영배쌤의 오늘은, 그의 바람처럼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희망을 건네고 있습니다. (글 | 임수미)
저널예순세번째
12월 30일(화)
“음악을 하는 나를 볼 때
‘꽤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세품아 드럼 강사 영배쌤 이야기)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골 좀 찬다” 는 소리를 들으며 자란 한 소년은, 전문 축구부가 있던 서울의 한 초등학교로 스카웃을 받게 됩니다. 그러나 집안 형편은 그를 뒷받침해 주지 못했습니다. 부모의 지원 없이 그는 오롯이 실력만으로 친구들과 경쟁해야 했습니다.
중학교에 진학하면서 그는 곧, 실력만으로는 넘을 수 없는 현실이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매달 부담해야 하는 훈련비와 전지훈련 비용을 감당할 수 없게 되자, 그를 시기하던 학부형들의 시선은 점점 더 날카로워졌습니다. 어느 날, 비어 있는 자신의 락커를 마주한 순간, 그는 직감했습니다. 이제 더 이상 축구를 할 수 없겠구나.
설상가상으로 자신을 괴롭히는 선배를 폭행하는 사건까지 겹치며 그는 공식적으로 축구부에서 퇴출되었고, 강제 전학 조치로 고향인 부천으로 돌아오게 됩니다. 그때부터 그의 방황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엄마는 잘 기억이 나질 않아요. 아주 어릴 때 인형뽑기 기계에 만 원을 넣어두고, 뽑기에 정신이 팔린 나를 두고 사라져 버렸거든요. 할머니랑 아버지, 누나랑 살았어요. 아버지는 노동일을 하셨던 것 같은데, 살림은 좀처럼 나아지지 않았고 술을 많이 드셨어요. 지긋하게 가난했어요."
가족과 어른들에 대한 분노가 그의 동력이 되었고 “될 대로 되라”는 마음은 그의 무기가 되었습니다. 전학 간 학교에서 선생님들의 골칫거리로 자리 잡는데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싸움을 일삼는 것도 문제였지만, 더 큰 문제는 그가 본드 중독에 빠져 있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러던 중, 그와 함께 비행을 저질렸던 한 친구의 ‘전도’(?)로 교회에 나가게 되었고, 이 말도 안 되는 사건이 그가 처음 세품아를 만나게 된 계기가 됩니다. (초기 세품아가 작은 교회에서 시작되었다는 사실은 다들 알고 계시죠.)
“나한테 뭘 요구하더라고요. ‘드럼 배워볼래?’ 누군가 나한테 뭔가를 해보자고 요구한 건 그때가 처음이었어요.”
처음부터 드럼이 재미있었던 건 아닙니다. 하지만 뭐든 시작하면 끝을 봐야 한다고 믿는 그는, 방학이 되자 하루 종일 드럼 앞에 앉아 시간을 보냈습니다.
“고등학교에 들어가서 갑자기 개근상을 한번 받아보자는 생각이 들었어요. 내 노력으로 뭔가를 바꿔보고 싶었달까요. 그래서 지각도 안 하고 학교를 정말 열심히 나갔어요.”
문제만 일으키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던 학교는, 이유를 알 수 없는 그의 변화에 오히려 당황하기 시작했습니다.
“첫 공연은 아직도 잊히지 않아요. 실력은 말도 안 됐죠. 근데 합주를 하면서, 공연에서 함께 호흡을 맞추는 그 순간… 말 안 해도 눈으로 다 알 수 있잖아요. ‘아, 이거 진짜 뽕 가는데…’ 평생 처음 느껴본 감정이었어요. 본드를 이긴 유일한 도파민이었죠.”
그 이후 그는 본드를 한 번에 끊지는 못했지만, 조금씩 줄여 나가기 시작했습니다. 본드를 하면 그 ‘좋은 경험’을 할 수 없다는 사실이, 그에게 끊어야 할 이유가 되어주었기 때문입니다.이 경험을 토대로 세품아의 교육 철학 ‘건강하지 못한 중독은 건강한 중독으로 치료한다’ 는 문장이 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계속 하다 보니까 이 길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음악을 하는 나를 볼 때 ‘꽤 괜찮은 사람인데?’라는 생각이 들었거든요. 사람들도 그렇게 봐줬고요. 예전엔 그냥 쌩양아치였는데요.” 그는 지금, 드럼 강사이자 지움관 생활교사로 세품아와 함께하고 있는 장영배 선생님(31)입니다.
“영배쌤은 좀 달라요. 쌤들이 우리를 이해한다고는 말하는데, 실제로 이해하기는 쉽지 않거든요. 근데 영배쌤은 진짜 우리를 이해해요. 아마도… 자기 자신도 우리랑 비슷한 삶을 살아서 그런 것 같아요.” (지움학교 학생)
“아이들을 보면 안타까워요. 다들 진짜 괜찮은 아이들인데 왜 이런 못난 생각과 행동을 할까 싶어서요. 그래서 더 혼도 내고, 더 얘기도 하려고 해요. 세상에 변할 수 없는 사람은 없어요. 저를 보세요. 결국은 곁에 누가 있느냐의 문제더라고요. 행동과 상관없이 끝까지 믿고 옆에 있어 줄 어른이 필요해요. 세품아가 저에게 그랬던 것 처럼요.”
원망은 어릴 때나 하는 거라며 웃어 넘기지만, 그의 현재 삶 역시 결코 녹록지 않습니다. 평일에는 학원 강사로 일하고, 주말에는 세품아에서 근무하며 경제적 가장의 역할을 감당하는 동시에, 누나와 함께 치매를 앓고 있는 할머니를 돌보고 있습니다. 최근 아버지의 병환으로 큰 병원비가 들었을 때도 그는 “괜찮다, 다 해낼 수 있다”며 오히려 주변을 안심시켰습니다.
“사람들이 나를 보고 희망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어른들은 자기 자녀도 잘될 수 있다는 희망을, 앞이 보이지 않는 청년들은 어려운 환경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살아가는 삶의 모습을, 그리고 스스로 변할 수 없다고 믿는 세품아 아이들에게는 ‘지금의 내가 희망’이 되었으면 해요.”
풍요롭다고 말할 수는 없고, 어쩌면 초라해 보일 수도 있는 현실, 그러나 그 자리에서 발을 딛고 꿋꿋이 걸어가고 있는 영배쌤의 오늘은, 그의 바람처럼 우리에게 조용하지만 분명한 희망을 건네고 있습니다.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