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열네번째] 김희정 선생님 이야기

관리자
2023-12-04
조회수 389

12월 5일 (화)    

열네번째 이야기    





"일반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여겨지는

아이들 하고만 수업을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어요"

(중학교 영어교사 김희정 선생님 이야기)




(SCL 도서관에서 책을 고르고 있는 희정쌤)


오늘의 주인공은 조그마한 외모에 당찬 속내를 지니고 계신 김희정 선생님입니다. 희정쌤은 인천 소재 한 중학교의 영어교사로, 개인적인 사정으로 휴직을 하는 중 세품아를 몸소 경험하기 위해 현재 포천에서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현직 교사의 시선으로 바라 본 세품아는 어떤 곳 일까요? 궁금증과 호기심을 가지고 희정쌤과 인터뷰를 진행해 보았습니다. 


-자기 소개 부탁드려요. 

 안녕하세요, 읽고 쓰는 것을 좋아하고 사람에게 영감을 주는 일을 하며 살아가고 있는 김희정 입니다. 


-세품아와 함께 하게 된 사연을 듣고 싶어요. 

 세품아와 첫번째 인연은 2017년도로 거슬러 올라가요. 제가 대안학교(거꾸로캠퍼스)에 근무하고 있을 때 아쇼카펠로우인 명성진 목사님과 알게 되었죠. 이후 거꾸로캠퍼스 선생님들과 세품아 친구들을 대상으로 교과 수업을 했어요. 그리고 작년 9월부터는 주 1회, 세품아 아이들의 독서수업을 하게 되면서 두번째 인연이 시작되었죠. 더불어 세품아 도서관을 만드는 프로젝트에도 합류 하면서 더 자주 함께 하고 있습니다. 


-세품아의 첫인상은?

두 가지 였어요.

1)위기 청소년들의 교육기관 

2)아이들의 정서적, 인지적 교육은 물론 이후 그들의 자립까지 함께 생각하는,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헌신하는 곳


그리고 독서수업으로 아이들과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만나며 알게 된 점은, ‘아이들의 변화가 늘 상승곡선이거나 일정하지는 않더라도 실제로 긍정적인 변화가 이루어지는구나. 그런 변화를 위해서는 조직의 굉장한 계획적 노력과 몰입이 필요하구나’ 라는 점이예요. 


-직접 세품아와 함께 하시면서 들었던 생각이 궁금해요. 세품아가 학교와 다른 점은 무엇인가요? 

 명성진 목사님과는 저 뿐 아니라 혁신 대학교육에 종사하고 있는 신랑과도 인연이 있어 종종 함께 자리를 했었어요. 우연히 제가 책을 좋아한다는 사실을 아시고, 독서수업을 부탁하셨죠. 그동안 개인적으로 독서모임을 7~8년간 하며 함께 책을 읽고 나누는 즐거움을 잘 알고 있었죠. 그 경험을 바탕으로 아이들의 변화에 기여를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지 않을까라는 기대로 수업을 시작하게 되었어요. 


 세품아는 기독교 기반의 조직이지만 저는 신을 믿지 않는 비기독교인 이예요. 제가 갖고 있는 신념 또한 확고한 편이죠. 그런데 세품아에서 예배까지 참여하며 함께 할 수 있었던 점은 이곳이 종교위에 세워진 기관은 맞지만 ‘교리’ 위주의 종교 기관이 아니라 ‘실천적이고, 선한 가치를 실현하는 곳’이기 때문이었어요. 즉, 세품아를 저의 교육가치관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는 교육기관으로 먼저 인식을 했던 거예요. 무엇보다 이곳에서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고군분투하며 헌신과 노력을 아끼지 않고 있는 교사들에게도 배울 점이 많다고 생각했어요.


 2023년도는 세품아가 이미 갖고 있는, 또 새롭게 만들어가는 미션과 비전을 교사들과 맞춰나가는 ‘캠페인’(일종의 교사 워크숍)을 시작한 해였어요. 가치 기반의 조직에게 꼭 필요한 작업이죠. 조직이 지향하는 모습의 꿈을 그려 나가면서 교사들 개인의 삶의 스토리도 함께 나누는 시간이죠. 또 교사 북클럽도 일주일에 한 번씩 진행했는데요. 책을 통해 더 나은 사람이 될 뿐 아니라 책이라는 공통의 매개체를 통해 내 이야기를 하고, 그것을 진실하게 들어주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은 더없이 소중하죠. 이런 과정들이 일반학교와는 다른 지점이에요. 일반학교에서는 행정절차의 통일은 있지만 가치를 공유하지는 않죠. 교육적 가치의 구축과 실현이 교사 개인의 몫으로 남는다는 점이 교사를 외롭게 하는 요인 중 하나예요. 그래서 세품아의 이런 노력들이 소중하고 가치 있게 느껴졌고 다른 교육기관에도 필요한 작업이라는 생각도 들어요. ‘교사들이 공동체가 되어가는 노력’의 선구적 역할모델이 되길 바라는 마음이에요. 


-세품아 아이들을 보면서 드는 생각과 고민들이 있다면?

 먼저 세품아 아이들이라고 하여 제가 학교에서 만나는 아이들과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는 않아요. 한 반에 30명이 있다면 그 중 3~4명의 문제아처럼 보이는 아이들이 세품아 친구들과 같죠. 다만 차이점은 그런 아이들만 이곳에 있다는 점이고 세품아는 그 아이들만을 위한 기관이라는 점이 일반 학교와는 다르죠. 

일반학교는 모든 아이들의 교육을 위한 곳이다 보니 상대적으로 세품아 친구들 같은 아이들이 소홀히 될 수 있어요. 이점이 굉장한 아니러니 이지요. 

 세품아 친구들은 대부분 가정에서 돌봄과 양육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고 그 결과 정서적(때로는 신체적 부분도) 발달이 잘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볼 수 있어요. 이 점이 세품아에 있으면서 많이 알게 된 점이예요. 

일반학교의 담임교사를 한다면 모든 아이들의 가정환경과 어려움을 신경 쓰고 돌볼 수 없거든요. 학교에 잘 적응하지 못하고 규칙 등을 어기거나 문제를 일으키는 학생은 당연히 눈에 띄고 신경을 쓰게 되기는 하지만 이 친구들의 학교 외 생활까지 챙기기는 어려운 일이죠. 그런데 세품아에 있으면서는 이 친구들이 학교에 없을 때의 환경과 생활이 이들의 삶에 굉장히 중요한 요소로 작용하는구나를 절실히 깨닫게 되었어요. 

 또한 학교에서 문제를 일으키면 ‘학폭’의 과정이 진행됩니다. 당연히 잘못에 책임을 지는 과정은 필요하지만 동시에 이 친구들이 문제를 일으키게 된, 주로 가정환경 등의 원인을 파악하고 이에 대한 적절한 케어도 필요하죠. 그러나 이 부분의 처우까지 이루어지기는 어려우니 ‘굉장한 딜레마구나’를 느끼며 학교와 교사의 역할에 대한 고민이 많이 되었어요. 


 이 친구들과 독서수업을 하면서 여러 희노애락이 있었는데요. 일반학교에서 소위 ‘문제아’로 여겨지는 아이들 하고만 수업을 하는 것은 사실 쉽지 않았어요. 특히 생활관은 이제 막 재판을 받고 세품아에 온 지 6개월이 채 되지 않은 아이들이죠. 일상적인 언어적, 신체적 폭력의 습관을 갖고 있고, 감정조절도 어려워하죠. 반면 그룹홈과 자립홈은 세품아에서 보낸 시간이 최소 6개월에서 2년 정도인 친구들이에요.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감정과 행동을 조금씩 조절해가며 변화하고 있는 친구들이죠. 변화하지 않은 모습부터 변화된 모습의 아이들을 모두 만나며 독서수업이 ‘재밌다’는 아닐지라도 이들의 변화에 조금이라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길 늘 바랐어요.


 생활관에서 그룹홈으로 막 옮긴 뒤 처음 참여한 독서수업에서의 민수(가명)의 표정과 첫마디가 아직도 기억에 남아요. 책의 내용에 대한 생각을 묻는 질문에 멍한 얼굴로 “모르겠는데요.”만 되풀이했죠. 순간 속으로 ‘아, 어쩌지’ 란 생각을 했어요. 한 달 정도 지나며 민수에게서 생각이 틔워지는 걸 볼 수 있었어요. <죽음의 수용소>를 읽을 때는 누구보다 골똘히 생각하고 진지한 대답을 하는 모습에 저 혼자 감격스러워하기도 했어요. 그리고 민수가 그룹홈에서 자립홈으로 넘어갈 때, 자립홈에서는 <쇳밥일지>란 책이 거의 마무리 단계였어요. 민수에게 책을 건네며 다음주까지 다 읽어올 수 있을까? 했는데 정말 그 다음주에 민수 특유의 무뚝뚝한 얼굴로 “다 읽었어요.” 라는 말을 하더라고요. 


-교육자로서 이후 계획이 있으시다면? 

 하고 싶은 것은 많지만 일단 학교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거예요. 지난 10년간 저는 학생중심수업을 해왔고 대안학교도 만든 경험이 있어요. 좋은 교육자가 되려고 노력해왔다고 나름 자부심도 있었죠. 하지만 제가 보지 못했던 부분, 학교에서는 수면으로 드러나지 않는 가정의 일그러진 모습이 주는 영향이나, 일탈이 어떻게 일어날 수 있는지를 세품아에 있으면서 새로 알게 되었어요. 쉽지는 않겠지만 아이들의 학교 밖 삶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려고 해요. 관심을 갖지 않으면 보이지 않고, 알 수 없잖아요. 


-마지막으로 꼭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으신가요?

세품아의 멋진 도서관-Second Chance Library(세컨찬스라이브러리)가 개관을 했어요. ‘책만’있는 도서관이 아니에요. 취향을 쌓고 관심사를 넓힐 수 있도록 음악, 영화, 드로잉, 창작 등의 요소들이 한껏 들어가 있죠. 이곳에서 보이는 아이들의 모습은 또 다르더라고요. 어떤 환경조건이 제공되느냐에 따라 미처 몰랐던 재능과 관심사를 발견할 수 있음을 목격하고 있어요. 제가 세품아에 함께 하는 날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도서관에서의 아이들 모습을 더 잘 관찰하고 좀 더 보완하고 싶어요. 많이 관심 가져주세요! (인터뷰어: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