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예순다섯번째] 자립시리즈 1

관리자
2026-08-28
조회수 26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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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예순다섯번째  

9월 1일(화)  







“그래도 세상에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어”


자립시리즈 1






홈커밍데이,

졸업생들이 세품아를 공식적으로 다시 찾을 수 있는 날.


이날 세품아를 찾아온 민범이(24)의 모습은 예전보다 많이 수척하고 지쳐 보였습니다.

“지난달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어요. 3년 전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세 달 동안 악몽에 시달렸는데요. 지금 또 같은 꿈을 꿔요. 배달하려고 오토바이를 타고 가다가도 나도 모르게 눈물이 그냥 흘러요.”

엄마를 대신해 민범이를 애틋하게 챙겨주셨던 할머니의 죽음.

택시 운전을 하시다 얼마 전 큰 사고를 당해 오랫동안 병원 치료를 받으셨던 아버지.

민범이에게는 감당하기 벅찬 일들이 한꺼번에 찾아왔습니다.

“아버지가 사고 났을 때 유일한 가족인 저에게 전화가 왔었는데요. 제가 전화를 못 받았어요. 자꾸 그때가 생각나고, 이 모든 게 다 내 탓인 것만 같아요.”


스무 살을 세품아에서 보낸 민범이는 퇴소생 중에서는 드물게 대학에 진학했습니다.

한 학기를 다니다 휴학했을 무렵 할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슬픔을 겪던 그는 군대에 입대했습니다. 제대 후에는 공사장에서 일하며 아르바이트를 했고, 특전사에 지원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다리 부상으로 그 꿈을 이루지는 못했습니다.

복학을 생각하기도 했지만 수강신청 기간을 놓쳐버렸고, ‘나는 이제 무엇을 해야 할까, 어떻게 살아야 할까’ 하는 고민은 점점 깊어졌습니다.


그러다 올해 2월, 지인이 관리하는 배달업체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의 일을 해내는 민범이를 보며 업체에서는 그를 ‘에이스 직원’이라고 부릅니다.

하지만 정작 민범이의 마음은 복잡하기만 합니다.

얼마 전 겪은 할머니의 죽음과 아버지의 사고는 그를 더욱 깊은 슬픔 속으로 밀어 넣었습니다. 매일 반복되는 악몽도 힘들지만, 마음먹은 대로 되지 않는 자신의 삶이 답답하기만 합니다.

‘나는 왜 살아야 하지?’

어쩌면 민범이는 그 질문을 누구에게도 꺼내지 못한 채, 혼자 삼키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있었는지도 모릅니다.


세품아를 찾은 그는 지난 3년 동안 자신에게 있었던 일들을 교사에게 봇물처럼 쏟아냈습니다.

그리고 한참 이야기를 하던 그는 자신이 아무것도 제대로 이루지 못한 사람인 것처럼 고개를 푹 숙였습니다. 마치 ‘선생님이 보시기에도 제가 잘 살고 있지 못한 것 같죠?’라고 묻는 듯했습니다.

그때 교사가 말했습니다.

“잘 지내고 있네. 이것저것 도전하면서…”

예상하지 못했던 대답에 민범이는 살며시 고개를 들었습니다.

“진짜요? 다행이다…”

그리고 이내 눈물을 보였습니다.

그 눈물에는 어떤 마음이 담겨 있었을까요?

실패가 아니라 오히려 그 시간은 ‘묵묵히 살아내고 도전했던 시간’이라고 말해주고 싶었던  교사의 마음을 그는 알까요??


홈커밍데이에 세품아를 찾아온 16명의 아이들의 이야기도 크게 다르지 않았습니다.

“오랜만에 다 같이 모여 밥 먹고, 누군가에게 말하기 힘든 고민들을 선생님들과 나눌 수 있어서 좋았어요.”

‘오늘 활동 중 가장 즐거웠던 순간은 언제였나요?’라는 질문에 준열(21)이의 대답입니다.

이 날 참석한 친구들의 절반 이상이 비슷한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자립한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돈을 버는 방법, 직업을 찾는 방법, 혼자 살아가는 방법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절실한 것이 있었습니다.

“앞으로의 평생 직업, 그런 뭔가를 혼자 생각할 때 답안지가 불확실한 것들을 여쭤볼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어요.” 병태(22)


그렇다면 아이들이 생각하는 ‘좋은 어른’은 어떤 사람일까요?

“기회를 주는 어른.” 한수(19)

“공감하고 도와주는 어른.” 준우(17)

“보고 닮고 싶은 어른.” 준열(21)

“성실하고 책임지는 어른.” 지윤(21)

“실수했을 때 잘못을 따지기보다는 내 마음을 먼저 이해해주는 어른.” 승범(21)

아이들의 대답은 특별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은 완벽한 어른을 원하지도 않았습니다.


검정고시에 합격했을 때 전화해서 자랑할 수 있는 어른.

학교에서 문제가 생겼을 때 도움을 청할 수 있는 어른.

살다가 문득 외롭다고 느껴질 때 찾아갈 수 있는 어른.

인생이 망했다 라고 느껴지는 순간에도 다시 손을 내밀 수 있는 어른.

아이들에게는 그런 어른이 필요했습니다.


어쩌면 자립의 마지막 단계는 혼자 살아가는 법을 배우는 것이 아니라, 혼자 감당하기 어려운 순간에 다시 누군가에게 손을 내밀 수 있는 힘을 갖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아이들의 자립은 세품아를 떠나는 순간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어디에 있든 다시 돌아와 손 내밀 수 있는 어른이 있다는 것을 아는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요?


아이들이 세상을 살아가다 길을 잃는 순간,

문득 당신을 떠올리며

“그래도 나를 믿어주는 사람이 한 사람쯤은 있어.”

그렇게 다시 힘을 낼 수 있도록.


우리, 그런 어른이 되어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