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스물한번째] 지움학교 정희이야기

관리자
2024-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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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2일 (화)    

스물한번째 이야기    




“말라빠진 도토리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떡갈나무가 있음을

늘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지움학교 정희이야기)




‘가지 많은 나무에 바람 잘 날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제멋대로 뻗은 요상한 가지같은 녀석들이 서른 명이나 되는 세품아는 고요한 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다움학교’ 친구들도 그렇지만 조금 더 날것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주는 ‘지움학교’ 는 날마다 크고 작은 일들로 조용할 날이 없습니다. (참고로 생활관은 ‘지움학교’로 그룹홈, 자립홈은 ‘다움학교’로 교육과정 명칭이 변경되었습니다) 누가 싸웠다, 마라톤 중 담배꽁초를 주워왔다는 등 끊임없이 전해지는 이런 이야기 속에 늘 단골손님처럼 등장하는 녀석이 바로 ‘정희’(18)입니다. 먼저 주도하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늘 그 무리 속에 함께 하는 친구입니다. 사고를 치고 교사와 면담을 하는 자리에서 그는 늘 고개를 숙이고 있었고, 자신만 억울하다고 말하는 여느 친구들과는 다르게 “네”와 “모르겠어요” 만을 반복하는 조금은 답답해 보이는 녀석이었습니다. 이런 정희를 보면 지금 이 녀석이 내 얘기를 듣고는 있는건지, 이해는 하고 있는 건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 두번이 아니었습니다.


이런 정희에게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그 전부터 여러가지 사건 사고가 있긴 했지만 이번에 일어난 일은 조금 달랐습니다. 어느 날 밤, 담배를 피고 싶은 마음에 지움관(전 생활관)의 몇몇 친구들과 함께 숙소 창문을 통해 탈출을 시도했습니다. 몰래 다시 들어가면 아무도 모를 거라는 생각이었지만, 그들의 계획과는 달리 이 은밀한 일이 모두에게 들통 나 버리고 말았습니다. 공간의 경계가 그 무엇보다 중요시되는 세품아의 특성상 이번 일로 정희는 법원으로 부터 6개월 연장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때가 세품아 생활 2개월쯤 접어 들 때였습니다. (참고로 세품아 생활 초기에 6개월 연장을 받는 사례는 이전에도 없었습니다) 6개월 연장은 정희에게 갑자기 미래가 사라져 버리는 것 같은 암흑의 경험이었습니다. “그때 너무 힘들었어요. 너무 싫었고, 다른 어떤 생각도 나지 않았습니다. 그저 오래 살아야 한다는 한가지 생각밖에요.” 연장을 받은 정희가 안쓰럽긴 했지만, 반복되는 정희의 행동을 이해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정희는 정말 생각이 있는 친구일까?‘


이 소동이 지난 간 후 재미있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세품아에서 사고를 좀 친다는 아이들이 모여서 이야기를 하더라고요. 뭐 세품아에 대한 불만, 선생님들에 대한 불만이죠. 자신들이 했던 행동보다는 그 행동들을 바로잡으려는 선생님들의 말과 행동에만 서운함을 느끼잖아요? ‘선생님들은 우리만 싫어한다.’ ‘차별한다’ 라는 말들이 아이들 사이에 오고 가는 중이었습니다. 그러자 가만히 듣고 있던 정희가 한마디를 하더라고요. ‘나는 그렇게 생각 안한다. 그건 차별이 아니야. 우리가 혼날만 했어. 나는 선생님들 싫지 않다.’ 분위기에 휩쓸리다 보면 타인을 욕하는 것 쯤은 당연하게 여겨지는 이 또래들의 대화에서 정희가 자신의 생각을 소신있게 이야기 하는 것을 보고 너무 놀랐습니다.” 당직중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게 된 황병욱 PM은 정희의 변화를 단번에 알아챘습니다. 이 이야기를 함께 들은 다른 교사들도 정희를 새롭게 이해하게 되는 순간이었습니다. 더욱 놀라운 건, 시간이 지나면서 사고를 치는 아이들의 명단에서 정희의 이름이 전보다 적게 들린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더니 얼마 전 부터는 검정고시를 보겠다고 공부를 시작했습니다. “예습 뿐 아니라 복습을 해 오는 유일한 친구에요. 기초가 부족해서 해야할 것이 많긴 하지만,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 보면 감동이예요.” 학습을 담당하시는 은성 PM의 이야기입니다. 


위 이야기가 ‘교사의 시점’이라면 ‘정희의 시점’으로 다시 한번 들어보겠습니다. “선생님들과 상담도 하고 대화도 나누면서 선생님들이 나를 생각해 주신다는 마음이 들었어요. 그러다 보니 선생님들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았고, 사고치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러다가 주희쌤이 검정고시 공부를 제안해 주셨고, 한번 해봤는데 생각보다 할만 하더라고요. 합격하면 뿌듯할 것 같지만 아마 떨어질 거예요. 그래도 내가 공부를 너무 싫어했는데 공부를 한다는 것 자체가 달라진 점 같아요.” 자신의 변화에 대해 이야기 해 달라는 인터뷰 질문에 자신은 크게 변화된 것이 없다는 이야기를 여러 번 하더니 선생님들을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다는 이야기와 자신은 잘 모르겠지만 그나마 달라진 게 있다면 공부를 시작한 것이라고 수줍게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들 눈에는 새로운 것들이 마구 보이기 시작했는데 왜 그는 정작 자신의 변화를 느끼지 못할까요? 어쩌면 정희의 말이 맞을지도 모릅니다. 변화라기 보다는 어쩌면 정희는 처음부터 저런 친구였는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만 교사인 내가 그런 정희를 미처 알아 보지 못한 것일 뿐… 그는 생각이 없어서 ‘네’ 라는 대답만을 한게 아니라, 어른과 대화하기가 어려운 친구였고, 교사와 이야기 할 때는 눈도 못 마주치는 녀석이지만 또래 친구들과는 해맑게 웃을 수 있는 수다쟁이 친구였고, 공부를 못하는 친구가 아니라 한번도 공부를 같이 해 보자는 제안을 받아 본 적이 없는 친구였으며, 현재 그는 난생 처음 해보는 공부에 재미를 느끼는 중이며, 다른 친구들 보다 조금 늦게 주변의 좋은 어른인 선생님들에게  반응해 이제서야 조금씩 자신을 보여주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저널을 위해 정희와 그리고 주변 선생님들과 인터뷰를 나누는 내내 정희가 아니라 그를 바라보는 교사인 나의 시각이 문제였다는 생각이 내 머리를 채우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원래 빛나는 녀석이었고 다만 남들보다 조금 늦게 그게 보였을 뿐이라는 것… 말라빠진 도토리를 보면서도 여전히 그 안에 떡갈나무가 있음을 늘 기억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그런 내가 되길 바라며, 혹 정희같은 친구앞에서 같은 고민을 하는 어른들이 있다면 그분들과 이 글을 함께 나누고 싶습니다.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