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스물두번째] 지움학교 민이 이야기

관리자
2024-0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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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26일 (화)    

스물두번째 이야기    





“나 때문에 힘들었을 동생 입장을 생각하니?

내가 엄청 비겁하고 치사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지움학교 민이 이야기)




  불만으로 가득찬 것 같은 민이(17)의 표정은 처음 지움학교에 들어 오면서 부터 그를 외롭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의도하진 않았지만, 그와 마주하는 친구들은 민이의 표정이 못마땅했고, 그의 띠껴운 표정을 넘어 허세 넘쳐 보이는 민이의 썰(?)은 아이들의 환영을받지 못했습니다. 이런 외로운 상황이 자신에게는 별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듯 그의 거친 표정과 욕설은 이어졌지만, 그를 조금만 관심있게 보는 교사라면, 딱딱한 겉모습 속에 가려져 있는 그의 여린 내면을 금방 알아챌 수 있었습니다. “저 백가희의 ‘하필이면’ 이랑 ‘당신이 빛이라면’ 이라는 시 좋아해요. 사실 제 타투(안중근의 손)는 의미가 있어요. 저는 타투도 예쁜것만 해요. 이레즈미 같은 거 보면 속이 안 좋아요.” 인턴 선생님이 먼저 정호승 시인의 시를 인용하여 이야기하자 민이가 자신의 이야기를 늘어놓습니다. 


그러나 일상에서는 그의 부드러운 마음 보다는 거칠어 보이는 말과 표정이 사람들과 먼저 만나게 된다는 것이 갈등의 시작이 되었습니다. 자신은 철없는 동생들을 교육하는 마음이라지만, 욕이 섞인 그의 훈계(?)와 표정은 동생들의 오금을 저리게 하기 충분했습니다. 이런 일이 반복될 때면, 민이의 마음과는 달리, 동생들을 괴롭히는 형의 행동에 책임을 져야 하는 일이 늘어만 갔습니다. 그리고 또 하나! 민이가 하고 나면 꼭 후회하는 일이 있습니다. 자신이 억울하다고 느낀다거나, 뭔가 지고 싶지 않은 상황이 오면 상대가 어른이라고 해도 민이는 화를 내며 덤벼드는 때가 종종 있습니다. 즉각적으로 후회하는 일이긴 하지만, 종종 일어나는 이런 일들은 민이에게 더욱 ‘힘든 아이’라는 꼬리표를 달게 하기에 충분했고, 사실 마음이 여린 그는 그런 시선이 견디기 어려워 보였습니다. 


동생들을 불편하게 하는 행동이 반복되자, 민이는 두번째 ‘멈춤’을(타인에게 피해를 줬거나 규칙을 반복적으로 어길 때 자신의 스케줄을 잠시 멈추고 생각하게 하는 과정)하게 되었습니다. ‘멈춤’기간이 끝났다는 이야기를 듣고 민이와 이야기를 나누어 보았는데요. “지난번 멈춤은 왜 해야 하나 몰라 짜증이 많이 났는데요. 이번에는 좀 달랐어요. 선생님들과 이야기를 많이 나눠서 그런지 내 행동을 바로 보게 되었어요. 나 때문에 힘들었을 동생 입장을 처음 생각해 보았거든요. 그러니깐 내가 엄청 비겁하고 치사한 놈이라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사실 이 친구들이 반복되는 문제 행동을 멈추게 하는 요인은 여러가지 입니다. 대부분은 ‘처분변경이 될까봐?’ 라는 두려움이 가장 큰 요인인데요. 그들의 등 뒤에 버티고 있는 강력한 조치가 그들의 행동을 멈추게 하는 겁니다. 이것도 행동변화의 굉장히 중요한 요소이지만, 세품아가 더욱 주목하는 것은 행동의 변화 이전에 나오는 마음과 생각의 변화입니다. 자신의 행동의 결과를 예상하고, 가해를 한 자신의 감정보다 피해를 당한 피해자의 감정과 상황을 정확하게 인식할 때 비로소 ‘부끄럼’이란 감정을 느끼게 됩니다. 이 직면의 순간을 민이는 이번 ‘멈춤’을 통해 경험한 듯 보였습니다. ”사실 문신 무섭게 하고 힘주고 다니는 친구들요? 마음이 약한 애들이예요. 사실 저도 약해요. 밖에서 화내고 사람들에게 큰 소리 친것들요? 정말 화를 못 참아서 그런게 아니예요. 그렇게 하면 사람들이 나를 무서워 할거라 생각했어요. 그러길 바랬어요. 지금 생각하면… 사람들이 나를 얼마나 한심하게 생각했을까 싶어요. 먼저 사과할 줄 아는게 진짜 멋있는건데요. 세품아 선생님들 보면서 알았어요. 화날 일이 많은데 조용히 대화로 얘기할 수 있는 것, 선생님임에도 불구하고 뭔가 도전하는 것, 이런게 진짜 멋있는 거란 생각이 들었어요.“ 


마음이 부쩍 커 버린 민이를 보면서 기특한 마음도 들었지만, 그 이후에도 지움관에서 종종 문제행동을 이어가고 있다는 말을 들으면서 생각의 변화가 행동의 변화로 연결된다는 것 또한 만만치 않은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른들의 시간표에 맞춰 민이의 행동이 변하지 않는다해도 민이의 변화를 지지하며 인정하는 것이 교사의 몫이 아닐까 싶습니다. 이곳에서 일하면서 교사로서 쾌감(?)을 느끼는 순간이 있습니다. 예의 바른 얘기로 교사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순간, 짧은 시간에 행동의 변화를 보여 기특함을 느끼는 순간보다 더 고마운 건, 자신의 감정에만 충실했던 아이들이 비로소 타인의 감정에 주목하게 되는 순간, 타인의 아픔에 공감하고 자신의 행동 결과를 직면함으로 스스로 부끄러움을 느끼는 순간입니다. 금방 행동이 변화되지 않더라고 마침내 느껴지는 수치심의 경험이 부끄럽지 않게 인생을 살아가길 꿈꾸는 아이들의 삶에 건강한 동력이 되길 기대해 봅니다. (글: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