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월 7일 (화)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저 목표가 생겨서 절대 사고 안쳐요.
자격증도 따고 대학도 꼭 갈거예요”
(지움학교 진호 이야기)
작년 가을, 세품아에 온 진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얼굴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학교와 숙소, 선생님들. 조금 새로운 모습들도 있었지만 캠퍼스의 모든 풍경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곳에서 두 번째 생활을 시작하는 진호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처음에 좀 어색했는데 이사장님이 안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작년에 퇴소하지 않고 목사님 말씀대로 그룹홈(現다움학교)에 갔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됐네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후회 섞인 아이의 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러한 마음을 갖고 시작하는 진호의 모습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들이 삶을 변화시킬 동력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는지 진호의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안에 자리한 하류문화의 감성을 다시 깨우고 온갖 나쁜 습관을 퍼트리는 일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책상에 잔뜩 쌓아놓은 문제집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은 선생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진호는 선생님들이 없는 장소에서는 욕설과 폭력으로 생활공간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고 동생들에게는 온갖 심부름을 시키며 부리는 등 유명한 소설 속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진호의 모습이 선생님들에게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호를 콕 집어서 말하면 너무 상처받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이들 모두에게 ‘나쁜 문화를 만들지 말자’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진호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듣는 듯 관심 없어 보였고,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진호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때린 형들은 ‘장난’이었지만 맞은 동생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럼 애초에 싫다고 이야기를 하던지, 지들도 좋다고 한거에요. XX같은 XX들이 이제 와서 지랄이야. 아, 책임질게요. 책임 활동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야기하기 싫으니까 그만 하세요.” 이런 진호의 태도에 덩달아 화가 올라오는 마음을 누르면서 적막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차피 선생님들 다 차별하시는 거 알아요. 좋아하는 애들만 좋아하고 저 같은 애들은 열심히 해도 알아봐 주시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해도 잘못했다고 할 건데 들어서 뭘 해요? 그리고 어차피 이야기 좀 한다고 바뀌는 거 없어요. 그냥 저는 원래 이렇고, 못 배워서 그런 거니까 그냥 이야기하지 마세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화를 내며 쏟아내는 진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진호가 하는 말 중에 맞는 말은 하나도 없지만 진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호가 탑처럼 쌓아놓은 문제집과 책들은 위장 전술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관심과 칭찬을 바라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데리고 무심한 척 볼펜 한 자루를 사주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뭐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내냐고 묻는 물음에 “음악수업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공연 때 다른 애들은 1-2곡만 연습하면 되는데 저는 3곡 하래요. 제가 좀 잘한대요. 근데 3곡 다 연습하면 힘들 것 같아서 줄여 달라고 하거나 그냥 안하려고요.”. 이야기를 듣고 3곡 모두 포기하지 않고 연습해서 공연에 올리면 카페를 데려가겠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잠시 짓더니 알겠다고 대답한 진호는 그날부터 기타연습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3곡 모두 공연에서 멋지게 연주했습니다.
이후로 진호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진호의 입에서 ‘차별한다’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이 일기장에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 알려주면 더 이상 ‘못 배워서 그런거에요’ 라고 말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하며 눈치를 보다가 멋쩍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진호는 이제 다른 책들로 다시 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심이나 칭찬을 바래서가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탑입니다. 복싱선수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마음에 좌절했던 진호의 마음을 일으켜준 새로운 꿈은 개통령 ‘강형욱’님 같은 반려동물훈련사입니다. 지금 진호의 사물함에는 동물백과사전부터 자격증시험 문제집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문제집 잘 풀고 있느냐는 말에 진호는 “할 만 한데 외울 게 너무 많아요. 집에 가도 별로 못 놀고 계속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이제 절대 사고 안쳐요. 자격증도 따고 대학도 꼭 갈거예요.”
여전히 진호는 아이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마음을 무겁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알고 다음 날 편지지에 깔끔하게 적어 봉투까지 담아온 자발적인 진호의 반성문을 읽으면 기대가 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진호의 이런 작은 변화들을 보며 진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변화와 성장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꿈의 탑’을 쌓기 시작한 진호의 성장 이야기. 또 전해 드릴게요. (글: 황병욱)
*황병욱 PM은 지움학교에서는 생활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 가정에서는 귀여운 아들의 아빠, 그리고 한 아내의 자상한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습니다.
5월 7일 (화)
스물다섯번째 이야기
“저 목표가 생겨서 절대 사고 안쳐요.
자격증도 따고 대학도 꼭 갈거예요”
(지움학교 진호 이야기)
작년 가을, 세품아에 온 진호는 다른 아이들과 달리 얼굴에 여유가 있었습니다. 학교와 숙소, 선생님들. 조금 새로운 모습들도 있었지만 캠퍼스의 모든 풍경이 익숙했기 때문입니다. 같은 곳에서 두 번째 생활을 시작하는 진호에게 소감을 물었습니다. “처음에 좀 어색했는데 이사장님이 안아주셔서 감사했어요. 작년에 퇴소하지 않고 목사님 말씀대로 그룹홈(現다움학교)에 갔으면 좋았을텐데 이렇게 됐네요.” 감사한 마음을 표현하며 후회 섞인 아이의 말에서 안타까운 마음이 많이 들었지만 그래도 이러한 마음을 갖고 시작하는 진호의 모습이 기대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마음들이 삶을 변화시킬 동력으로 삼기에는 턱없이 부족했는지 진호의 삶은 얼마 지나지 않아 아이들 안에 자리한 하류문화의 감성을 다시 깨우고 온갖 나쁜 습관을 퍼트리는 일을 주도하고 있었습니다. ‘책상에 잔뜩 쌓아놓은 문제집들과 성공한 사람들의 자서전은 선생님들을 안심시키기 위한 위장전술이었나?’ 생각이 들 정도로 진호는 선생님들이 없는 장소에서는 욕설과 폭력으로 생활공간을 공포 분위기로 만들고 동생들에게는 온갖 심부름을 시키며 부리는 등 유명한 소설 속의 ‘일그러진 영웅’을 보는 듯한 느낌이 들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이런 진호의 모습이 선생님들에게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진호를 콕 집어서 말하면 너무 상처받지 않을까 싶은 마음에 아이들 모두에게 ‘나쁜 문화를 만들지 말자’고 여러 번 이야기해도 진호는 나와 상관없는 이야기로 듣는 듯 관심 없어 보였고, 모습은 그대로였습니다. 그래서 결국 진호를 따로 불러 이야기했습니다. 때린 형들은 ‘장난’이었지만 맞은 동생들에게는 ‘폭력’이 될 수 있다는 이야기에 “그럼 애초에 싫다고 이야기를 하던지, 지들도 좋다고 한거에요. XX같은 XX들이 이제 와서 지랄이야. 아, 책임질게요. 책임 활동하면 될 거 아니에요. 그리고 이야기하기 싫으니까 그만 하세요.” 이런 진호의 태도에 덩달아 화가 올라오는 마음을 누르면서 적막한 시간이 흘렀습니다. “어차피 선생님들 다 차별하시는 거 알아요. 좋아하는 애들만 좋아하고 저 같은 애들은 열심히 해도 알아봐 주시지도 않고, 무슨 말을 해도 잘못했다고 할 건데 들어서 뭘 해요? 그리고 어차피 이야기 좀 한다고 바뀌는 거 없어요. 그냥 저는 원래 이렇고, 못 배워서 그런 거니까 그냥 이야기하지 마세요.”
당황스러울 정도로 화를 내며 쏟아내는 진호의 말을 듣고 있자니, 진호가 하는 말 중에 맞는 말은 하나도 없지만 진호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는 알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진호가 탑처럼 쌓아놓은 문제집과 책들은 위장 전술이 아니라 선생님들의 관심과 칭찬을 바라던 마음의 표현이었습니다. 다음 날, 아무 말 없이 데리고 무심한 척 볼펜 한 자루를 사주고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했습니다. 요즘 뭐하면서 시간을 많이 보내냐고 묻는 물음에 “음악수업 때 기타를 배우기 시작했는데, 공연 때 다른 애들은 1-2곡만 연습하면 되는데 저는 3곡 하래요. 제가 좀 잘한대요. 근데 3곡 다 연습하면 힘들 것 같아서 줄여 달라고 하거나 그냥 안하려고요.”. 이야기를 듣고 3곡 모두 포기하지 않고 연습해서 공연에 올리면 카페를 데려가겠다는 말에 놀란 표정을 잠시 짓더니 알겠다고 대답한 진호는 그날부터 기타연습에 매진했습니다. 그리고 3곡 모두 공연에서 멋지게 연주했습니다.
이후로 진호의 모습이 조금씩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가장 눈에 띄는 모습은 진호의 입에서 ‘차별한다’는 말이 없어졌습니다. 그리고 ‘감사하다’는 말이 일기장에 적히기 시작했습니다. 잘못한 행동에 대해 알려주면 더 이상 ‘못 배워서 그런거에요’ 라고 말하지 않고 ‘죄송합니다.’ 하며 눈치를 보다가 멋쩍은 미소를 짓습니다. 그리고 진호는 이제 다른 책들로 다시 탑을 쌓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관심이나 칭찬을 바래서가 아닌 꿈을 이루기 위한 새로운 탑입니다. 복싱선수의 꿈을 이룰 수 없다는 마음에 좌절했던 진호의 마음을 일으켜준 새로운 꿈은 개통령 ‘강형욱’님 같은 반려동물훈련사입니다. 지금 진호의 사물함에는 동물백과사전부터 자격증시험 문제집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습니다. 문제집 잘 풀고 있느냐는 말에 진호는 “할 만 한데 외울 게 너무 많아요. 집에 가도 별로 못 놀고 계속 공부해야 할 것 같아요... 저 이제 절대 사고 안쳐요. 자격증도 따고 대학도 꼭 갈거예요.”
여전히 진호는 아이들 사이에서 크고 작은 문제를 일으키고 있어 마음을 무겁게 할 때가 많습니다. 그래도 부끄러움을 알고 다음 날 편지지에 깔끔하게 적어 봉투까지 담아온 자발적인 진호의 반성문을 읽으면 기대가 되는 마음을 감출 수 없습니다. 진호의 이런 작은 변화들을 보며 진호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어 놓을 변화와 성장의 수레바퀴가 굴러가기 시작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꿈의 탑’을 쌓기 시작한 진호의 성장 이야기. 또 전해 드릴게요. (글: 황병욱)
*황병욱 PM은 지움학교에서는 생활과 교육을 담당하는 교사로, 가정에서는 귀여운 아들의 아빠, 그리고 한 아내의 자상한 남편으로서의 역할도 감당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