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스물일곱번째] "We are the Pathmaker"

관리자
2024-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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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월 4일 (화)    

스물여섯번째 이야기    





“We are the PathMaker”

(세품아의 고민… 그리고 우리의 소망)






얼마 전 한 예능에서 자신의 분야에서는 성공했지만, 사회적 관계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한 전문 댄서의 사연이 소개되었습니다. 그 때, 정신과 전문의는 ‘사회적 의사소통 장애‘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그 의미를 설명해 주었습니다. 타인과의 눈맞춤이 어렵고, 서로간의 미묘한 비언어적 시그널을 알아채지 못함으로 인해 의사소통의 어려움을 겪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당연하게도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것은 상상조차 할 수 없게 되며 도리어 이기적이라는 오해를 받기에 충분하게 되는 것이죠. 그 댄서는 자신 스스로도 이해하지 못했던 자신의 이야기를 전문의로 부터 들으면서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이 이야기를 가만히 듣고 있자니 세품아 친구들이 떠올랐습니다. ‘우리 아이들이 꼭 그런데…’ 설상가상 세품아 친구들은 초등 저학년때 부터 학습을 놓아버린 경우가 많습니다. 상식은 물론,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밑천이 부족하다보니 관계에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타인에게 피해를 주는 행동까지 서슴없이 행하게 되었습니다. 더 이해하기 어려운 건, 이들은 자신의 행동과는 상관없이 항상 자신만 억울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늘 불안해 합니다. 자신만의 감정과 세계에 갇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듯 보입니다. 이러한 감옥이 어떤 아이는 스스로를 괴롭히는 모습(자해)으로, 또 어떤 아이는 타인을 괴롭히는 모습(폭력)으로 드러났습니다. 이들은 이런 모습으로 세품아와 만나게 되었습니다. 


처음 세품아에 들어오는 아이들에게 보여지는 변화 중 하나가 자신의 마음을 수용해주는 단 한명의 어른과 자신의 마음을 나누는 것입니다. 유독 거칠고 마음을 닫고 있는 아이일 수록 단 한 사람과의 신뢰가 형성되면 태도의 극적인 변화를 보여줍니다. 표정이 밝아지고, 수다쟁이가 되며, 무언가를 해보려는 도전을 시작하죠. 그러나 이런 긍정적 변화와 함께 오는 어려움도 있는데요. 덩치가 큰 고등학생이 서너살 아이와 같은 떼쟁이가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해도 사랑할거야?’ 라는 울분과 함께 반항이라는 무기를 장착하고 선생님의 마음을 시험합니다. 그것도 오직 자신을 이해한다고 여기는 그 한 사람과만… 


그래서 우리는 배웠습니다. 이게 ‘변화’가 아니라 그저 ‘반응’일 수 있다는 것을요. 그리고 그 ‘반응’을 넘어 진정한 ‘변화’로 옮겨지게 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다음 단계라는 것도요. 그래서 우리는 ‘관계의 확장’을 꾀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자신에게 맞는 한 사람이 아니라 조금 성향이 다른 여러 사람과의 관계를 연습하는 것입니다. 엄마의 사랑을 연상케 하는 상냥한 선생님, 조금은 무섭지만 아빠 처럼 나를 지켜 줄 것만 같은 든든한 선생님, 나를 위해 뼈 때리는 조언을 서슴치않는 선생님, 세상의 모든 지식을 다 가지고 있을 것만 같은 든든한 형 같은 선생님… 이런 만남을 통해 한 아이는 자신을 둘러싼 새로운 우주를 만들어 갑니다. 그들을 닮아 가기도 하고 또 한편으로는 그들을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성장하려고 애를 씁니다. 기댈 수 있는 언덕이 많을 수록 아이는 안정을 누리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왜 꼭 저는 실수를 해야만 배울까요? 부끄러워요. 조금 더 좋은 모습으로 나가고 싶었어요. 사실 저는 알았거든요. 올해 초, 제가 나갔어야 했다는 것을요. 그때 대학진학을 선택하든, 군대를 선택하든 해야 했어요. 사실 알면서 모르는 척 한 것도 있어요. 그냥 세품아에 더 있고 싶어서요. 솔직히 말하면, 쫄려요!!! 밖으로 나가 실패할까봐요. 혼자 열심히 하다가 포기할까봐요. 그래서 나를 생각해 주는 선생님들 볼 낯이 없을까봐요.”  최근 이런 저런 일들로 선생님들의 속을 썩인 k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세품아에서 2년을 보내고 현재 자립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한번 배우게 되었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또 다른 확장이 필요할 때라는 것을요. 내 편이었던 한 사람에서 여러 사람으로, 그리고 이제는 나를 잘 알지 못하는, 아니 내 편이 아닌것 같은 사람들과도 더불어 살아가야 한다는 것을요. 아이들 입장에서는 세상으로 나가야하는 용기가 필요하고 세품아 입장에서는 이 아이들을 세상으로 보내야만 하는 용기가 필요합니다. ‘한 아이를 키우려면 온 마을이 필요하다’라는 아프리카 속담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포천의 세품아가 그들의 온 마을이었다면 이제는 포천을 넘어 전국으로 펼쳐질 온 마을이 필요합니다. 월세를 얻을 때 방법을 알려줄 수 있는 어른, 여자 친구에게 사랑받는 법을 코칭해 줄 수 있는 어른, 억울한 일을 당할때 그를 오롯이 믿어 줄 수 있는 어른, 실수 앞에서도 ‘넌 여전히 괜찮은 놈’이라고 등 두드려 줄 수 있는 어른, 잘하고 있을 때 내 일처럼 손뼉치며 웃어줄 수 있는 어른이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우리는 그들을 ‘Pathmaker’라고 부릅니다. 어쩌면 우리는 서로가 서로에게 ’Pathmaker’가 아닐까요?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