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서른여섯번째] 세품아 도서관: Second Chance Library

관리자
2024-10-08
조회수 162

10월 8일 (화)  

서른여섯번째 이야기  




“작가님, 출근 체크 해주세요!!!” 

나를 새롭게 불러주는 공간, 

Second Chance Library 




2024년 목조건축대전에서 대상을 수상할 만큼 멋진 외관을 자랑하고 있는 세품아 도서관, Second Chance Library 는 작년 11월에  처음 문을 열었습니다. 책과는 거리가 멀것 같은 아이들만 모여있는 세품아에 처음 도서관을 짓는다고 할때 의아한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독서뿐 아니라 영화, 음악, 사진, 제작등 14개의 주제서가로 이루어진 SCL(Second Chance Library)은 11개월이 지난 지금, 세품아에선 없어서는 안될 아이들의 최애공간이 되었습니다. 


해가 쨍쨍한 오후가 되면 도서관 바깥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옵니다. 도서관으로 달려오는 아이들 소리입니다. 아이들은 서로 먼저 들어오려고 엎치락 뒤치락하며 실내화를 신습니다. 후다닥 달려 들어오는 아이들을 편집자가 불러 세웁니다. “작가님, 출근 체크 해주세요!” “아, 맞다!” 아이들은 도서관에 오는 순간, 작가가 됩니다. 작가로서 출근하고, 작가로서 책을 읽고, 작가로서 도서관을 경험합니다. [도서관에서 아이들은 ‘작가’로, 교사는 ‘편집자’로 불리워 집니다]


 작가들은 다양한 모습을 보여줍니다. 자기가 원하는 게 분명해서 오자마자 “편집자님, 저 어제 보던 영화 볼게요!”라고 당당하게 말하는 작가도 있고, 본인만의 애착 자리를 만들어 꼭 그곳에서만 책을 쌓아두고 읽는 작가도 있고, 하고 싶은 게 또렷하지 않아서 다른 작가들을 따라다니거나 이곳저곳 둘러보는 작가도 있습니다. 하지만 30분 정도 시간이 지나면 모두 입을 반쯤 벌리며 무언가에 집중하는 ‘몰입의 시간’이 시작됩니다. 그때가 되면 도서관이 꽤 평화로워집니다. 그렇게 시간이 흘러서 오후 5시가 되면, 작가들이 퇴근할 시간입니다.


음악을 들으며 만화를 보는 작가
음악을 들으며 무엇인가를 그리는 작가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종이접기 작품을 만들고 있는 작가들
조용히 자신만의 그림을 그리는 작가


편집자의 주요 업무중 하나는 작가들의 활동을 관찰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세히 보다보면 생각지도 않은 놀라운 발견을 하기도 합니다. 하루는 의자에 멍하니 앉아 있는 작가에게 영화를 보는 건 어떤지 물었습니다. 글 읽기가 익숙하지 않아 책을 어려워 하는 작가였습니다. “영화 보고 나면 힘들어요” 처음에는 자막을 읽어야 해서 힘들다는 뜻인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작가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니 그게 아니었습니다. 작가가 영화를 어려워하는 이유는, 영화가 주는 감정의 파동이 너무 크게 느껴지기 때문이었습니다. 특정한 영화에서만 여운이 오래 남는다는 사람도 있지만, 어떤 영화를 보더라도 정서적으로 부담되는, 마음이 말랑말랑한 사람도 있는 거니까요. ‘글을 어려워하니까 한국어 더빙 영화를 보면 되겠지’라는 단순한 생각이 뒤집히는 순간이었습니다. 웃음을 참아야 하는 순간도 있습니다. “편집자님, 계기의 ‘계’가 ‘ㅖ’에요, ‘ㅒ’에요?” A작가의 용기있는 질문에 옆에 있던 B작가는 그것도 모르냐는 표정으로 파하하~ 소리내어 웃습니다. 편집자는 그 비웃음을 무한함으로 바꾸고 싶어 이렇게 말합니다. “몰라도 괜찮아요. 모르는데 질문하지 않는게 더 부끄러운 거예요.” 그러자 소리내어 비웃던 B작가는 창밖을 가리키며 능글맞게 말합니다. “저기 산이 웃기게 생겨서 웃었어요.” 자칫 멱살을 잡을 수 있는 위기의 순간도 SCL안에서는 멋진 시 한구절로 승화되는 순간입니다. 


뭐.할.책(뭐든 할 수 있는 책상)에서 개인 작업에 열중하는 작가님
작가님을 응원하는 편집자의 마음 > <


처음에는 애니메이션 포스터나 캐릭터만을 보고 따라 그리던 작가가 이제는 세품아 풍경과 자신이 가장 마음에 드는 공간을 그리게 된 것을 보며 보람을 느끼기도 하지만, SCL편집자들에게는 또 다른 고민들이 많습니다. ‘어떻게 하면 만화책만 소비하던 작가가 줄글로 넘어갈 수 있을까? 도서관 콘텐츠를 단순히 소비하는 것을 넘어, 자기 작품을 창조하는 행위로 넘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편집자들의 끝없는 고민과 작가들을 향한 무한한 애정이 3번의 리뉴얼의 과정을 거치고 이제 4번째 리뉴얼 작업을 준비하게 만들었습니다. 리뉴얼 작업은 기존의 작가들의 활동 동선을 분석하여 작가들이 익숙한 영역만이 아니라 더 다양한 영역을 경험하게 만드는 공간 재배치 작업입니다. 꽤 많은 품이 드는 편집자들의 수고로운 작업이지만, 덕분에 작가님들의 창작활동의 범위가 점점 다양해 지고 있다는 것이 감사할 뿐입니다. 



‘나의 말과 행동이 아이들의 새로운 정체성 형성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가?’ 이것은 아이들에게 어떻게 말하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을때 세품아 교사가 스스로에게 하는 필수 질문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SCL은 세품아의 정체성을 가장 진~ 하게 드러내고 있는 장소가 아닐까요?  (에피소드 제공: 이은송 편집자, 글: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