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서른일곱번째] 바다 보러 가자: 50명에게 50개의 커리큘럼

관리자
2024-11-05
조회수 69

10월 29일 (화)  

서른일곱번째 이야기  




"바다 보러 가자"

: 50명에게 50개의 커리큘럼




(드디어 도착한 바다, 하지만 비가 내려따...)




”환희야! 바다 보러 가자“

 

 

 

장난인 줄 알았습니다. 환희가 아는 종수쌤은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걸어서?? 그렇게 장난처럼 시작된 도보 여행은 2024년 10월 12일(토), 가평을 출발하여 18일(금)에 강원도 양양 낙산해변을 도착으로 총 6박7일 동안 걸어서 진행되었습니다. 여행 멤버는 오롯이 환희와 종수쌤 단 두사람 뿐^^

 

환희(19)는 2년 6개월간, 세품아에서 지내다 작년 10월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뭐든지 할 수 있을것 같은 마음과는 달리 환희의 주변 상황은 그리 녹록치 않았습니다. 끝까지 유지하고 싶었던 생활패턴도 시간이 지나면서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주변에는 여전히 불법으로 돈을 버는 친구들 뿐이었고, 아들이 많이 변했을 것이라고 믿었던 엄마의 기대가 실망으로 바뀌는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습니다. 누군가에게 사기를 쳐서 돈을 버는 주변의 친구들을 보면서 ’그래도 도박은 사기보다 나으니 괜찮지 않을까?‘ 라는 얕은 생각으로 환희는 도박에 손을 대기 시작했습니다. 잃을 때도 많지만 종종 큰 돈을 따는 쾌감에 쉽게 도박에서 손을 떼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무너지고 있는 자신을 보면서 두려운 마음이 들 때쯤, 종수쌤이 세품아로 다시 들어오라는 제안을 해 주었습니다. 큰소리를 치고 세품아를 떠났을 때를 생각하니 잠시 망설여지기도 했지만 자존심을 세울때가 아니라고 생각한 환희는 8개월만에 세품아로 돌아 왔습니다. 그러나 세품아 생활도 마음같지 않았습니다. 이미 도파민의 강력함에 찌들어 있는 아이는 쉽게 건강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없었고, 그렇게 나락속에서 헤매고 있을때 환희에게 여행제안이 왔던 것입니다. 

 

       ”저는 걷는 것도 좋아하고 생각 정리하는 것도 좋아해요. 그래서 그런지 종수쌤과 이런 저런 수다를 떨며 걷는 시간이 너무 좋았습니다.  4일째 되는 날까지는요. 근데 5일째가 되니깐 이렇게 반복되는 날이 나에게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심이 들더라고요. 너무 힘들기도 하고요. 짜증과 반항의 마음이 들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괜히 종수쌤한테 틱틱거리기도 했고요. 6일차가 되니 저절로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가정이 있는 선생님이 온전히 나를 위해 일주일을 투자해 주신건데 내가 왜 이렇게 행동할까? 미안한 마음이 들었어요. 용기내어 미안하다는 말을 건네진 못했지만, 다시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으로 미안한 마음을 대신했어요.“ (환희)


”걸으면서 세상 돌아가는 모든 이야기를 나눈 거 같아요. 서로의 과거, 현재, 미래, 이성문제, 창피했던 일, 즐거웠던 일, 연예인 얘기, 정치, 역사 등등 기억도 안 날 정도로요. 힘든 날도 있었습니다. 지도 어플을 보고 걷는데요. 분명 길이 있다고 해서 갔는데 잡초들이 허리까지 자라 있었어요. 그 잡초들을 뚫고 걷는 것도 힘들었는데, 잡초 잎이 머금고 있는 물기가 바지와 신발을 다 적셨습니다. 신발 안이 질퍽이고, 이 잡초길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모르던 그때가 기억납니다. 환희는 그 때 집에 가겠다는 말이 목구멍까지 나왔다고 하더라고요.“ (종수쌤)

 

꼭 그 잡초길이 환희의 마음 같아 보였습니다. 여행을 마치고 돌아온 환희는 요란을 떨며 이제 열심히 해보겠다고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그저 전보다 또렷한 눈빛으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생각이 정리됐으니 이제 행동에 옮겨야 겠어요. 근데 아직은 정리가 안돼요. 하고 싶은 것도 많고 해야할 일도 많아서요.  대학에 가고 싶은데 1년 안에 그것을 따라 잡을 수 있을지, 내가 몰두하고 그 시간을 잘 견뎌낼 수 있을지 조금 걱정도 됩니다.“ (환희) 


”경운기 시동 걸듯 생각의 시동은 걸린 것 같아요. 이제 전진하는 건 환희에게 달렸습니다. 예전처럼 빠르지는 않아도 꾸준히 가기를 원합니다.“(종수쌤) 

 

세품아의 교육이 ‘달팽이 같은 아이들을 위한 fast track‘이 되기 위해선 ’50명에게 50개의 커리큘럼‘이라는 것이 실현되어야 합니다. ’50개‘ 라는 단어 속에는 ’다양한 교육‘ 이란 의미도 포함되지만, 무엇보다도 교사의 속도가 아닌 아이들의 속도에 맞게 가장 필요한 것이 제공 되어야 한다는 의미가 더 정확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아이들을 자세히 볼 필요가 있는데요. 환희를 조금 더 자세히 들여다 보면 걸음을 멈춘 것이 아니라 조금 높은 둔턱을 만나 제자리 뛰기를 하고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이 때 필요한 건, 둔턱을 넘을 수 있도록 살짝 엉덩이를 쳐 주는 것^^;; 오~홋!! 이제 살짝 둔턱을 넘었으니 다시 손을 잡고 걸어가는 일이 남았습니다. 멈춰 있는것 처럼 보이는 한 아이의 발버둥을 볼 수만 있다면 달팽이에게도 fast track이 가능하단걸 우리는 믿습니다.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