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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 서른네번째] 법적 의무교육으로 만난 부모님들의 이야기

관리자
2024-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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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10일 (화)  

서른네번째 이야기  





“그 때는 저 사람말을 믿지 않았어요.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운동량이 많을 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어요.“ 

(법적 의무교육으로 만난 부모님들의 이야기) 





소년재판에서 청소년이 6호 처분을 받게 되면 그들의 부모님에게 8시간의 부모교육이 의무적으로 부여됩니다. 아이들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들의 부모님을 알아야 하고,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서는 부모님의 변화가 반드시 동반되어야 한다는 것을 절실히 실감하는 세품아에서는 법적으로 부여되는 ‘부모교육’이 아이들의 변화를 위해 꼭 부여잡아야 하는 동아줄 같은 것입니다. 잘못하면 형식적으로 끝나 버릴수도 있기 때문에 이 동아줄을 꼭 붙잡기위해 세품아는 두번으로 나누어 부모 교육을 진행합니다. 첫번째는 전체교육의 형태로 세품아의 교육철학, 교육과정, 법적과정을 강의하며, 그 후 공간라운딩, 자녀면회의 순서로 진행됩니다. 그렇게 세품아를 조금 알게 되신 부모님들을 대상으로 두번째는 각 가정별 개별 미팅을 진행합니다. 이 미팅은 해당가정의 자녀에 대해 함께 걱정하고 고민하며, 교육 솔루션을 모색하는 자리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윤규가 어릴 때 이혼한 부부는 부모의무교육으로 인해 다시 한 자리에 앉게 되었습니다. 

어머니 : 어린이집을 다닐때 부터 힘들었어요. 친구들과 늘 다툼이 일어났고, 놀이터에서도 친구들에게 흙을 뿌리는 일이 있었습니다. 엄마들 모임에 나가면 난리를 치고 친구들을 때리는 바람에 매번  일찍 돌아와야 했습니다. 병원을 데리고 갔더니 ADHD라고 했는데 아빠는 믿지 않더라고요. 

아버지 : 그때는 저 사람의 말을 믿지 않았어요. 아이가 그럴 수도 있지. 운동량이 많을 뿐이지…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거 같아요. 그래서 그냥 허용적으로만 대해줬어요. 최근에는 감당이 안되더라고요. 기분이 나쁘면 기분나쁜 대로 행동을 했고, 두서없이 문제를 저질러 놓고는 수습을 못하고 ‘자살하겠다, 뛰어내리겠다’ 난리도 아닙니다. 약도 먹어봤지만 도움이 되질 않았어요.

윤규는 세품아에서도 약속과 규칙을 빈번히 어기며 충동적인 행동을 자주 했으며, 문제 행동이 드러날 경우, 흥분하여 물건을 부수는 등 극단적인 행동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이혼 후 두 아들을 홀로 키우는 승주의 어머니는 새벽까지 일을 하고 세품아 근처에서 숙박을 한 후 부모면담에 참석했습니다. 일을 하며 홀로 두 아들을 돌보는 것이 여의치 않자, 승주 어머니는 승주와 남동생을 초등학교 저학년때까지 시골 할머니댁에 맡길 수 밖에 없었습니다. 초등학교 5학년때 부터 엄마와 함께 살게 된 승주는 별문제 없어 보이는 듯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에 입학했습니다. 그러나 자전거 절도가 들통이 나면서 아들의 비행에 대해 뒤늦게 알게 된 엄마는 절도가 이번이 처음이 아님을 알게 되었습니다. 혼자 일을 하며 아들의 절도에 대해 합의와 뒷수습을 하는 것도 힘이 들었지만, 도대체 반성의 기미가 없어 보이는 아들을 매번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 어머니에게는 너무나 고통스런 시간이었습니다. 어머니는 면담 내내 눈물을 흘리셨고 면담 막바지가 되면서 더 이상 참을 수 없다는 듯 통곡을 하셨습니다. 어떻게 해야 아들이 다시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는지 도무지 알 수 없을 뿐 아니라 앞으로 자신이 무엇을 해야 하는지 너무 암담했기 때문입니다. 


각 가정의 형편과 사정은 조금씩 다르지만, 다시 제자리를 찾기 바라는 부모님의 절절한 마음은 동일해 보였습니다. ”어떻게 하면 정신을 차릴까요?“ ”퇴소 후에 또 범죄할까봐 너무 걱정돼요“ ”어떻게 하면 이 녀석이 달라질까요?“ 부모님들의 한결같은 질문입니다. 그러나 잘 모르겠습니다. 오래 동안 세품아에 몸담고 있는 저도 단박에 아이의 행동이 바뀌는 마술같은 알약을 아직은 경험해 보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다만 부모님들과의 대화를 통해 더 선명하게 보여지는 마음들이 있었습니다. 초등학교 시절 아버지를 하늘나라에 보내고 2년간 홀로 슬픔을 감당하며 결국은 세상과 단절하고 방안에 틀어 박힐 수 밖에 없었던 민호의 깊은 슬픔과 막막함을, 충동조절의 문제로 놀이터에서 함께 놀고 싶은 친구에게 자신의 본심과는 달리 흙을 뿌려야만 했던 윤규의 혼란스러움이 더 선명하게 보였습니다. 물론 이들의 어려움이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었던 이들의 행동을 정당화할 수는 없지만, 이들의 변화를 위해선 어른인 우리가 이들을 더 정확히 그리고 자세히 바라볼 필요는 있어 보였습니다. 왜냐면 행동의 결과로만 이들을 바라보면 이들은 가해자이고 실패자일 뿐이니깐요. 


행동의 결과로써가 아니라 원인과 과정속에서 자녀를 다시 이해할 필요가 있었습니다. 아이가 왜 흙을 뿌릴 수 밖에 없었는지, 방에 틀어박히는 것을 선택해야 할만큼 한 아이의 슬픔이 얼마나 컸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또래 아이들보다 학습의 스피드가 느린 내 자녀의 상태를 정확히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 또한 매우 필요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은 ’결핍‘ 이 아니라 ’다름‘ 임을 받아들일때 내 자녀를 위해 내가 무엇을 해야 할지가 보이기 시작합니다. 느림을 인정하고 그만이 필요한 교육이 따로 있음을 발견할때, 비로소 부모와 세품아가 손을 잡고 함께 만들 교육의 솔루션이 만들어집니다. 이런 대화를 나누다 보면 부모님의 두 눈가에 맺히는 눈물과 만나게 됩니다. 초반 자식이야기를 하며 흘렸던 답답함의 눈물이 아닌 조용한 희망의 눈물이고, 당신의 자녀를 다르게 바라봐 주고 있는 세품아를 통한 위로의 눈물입니다. 부모님과 면담을 하다보면 너무 얽혀버려 풀지 못하게 된 실타래를 만난 것 처럼 교사로서 무력감을 느낄 때도 많습니다. 그러나 부모라는 이유만으로 죄인처럼 살았을 그들이 자신들의 이야기를 맘껏 풀어놓을 수 있는 장소가 된 것만으로, 또한 내 자녀에 대해 작은 희망을 다시 품을 수 있는 시간이 된 것만으로도 이 만남은 아주 감사한 일입니다.  (글 : 임 수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