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4일 (화)
열두번째 이야기
"누군가 한 명이 버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불편해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이 드는것 같아요"
(그룹홈 생활 한 달째인 무송이 이야기)
"그룹홈 간 걸 후회해요. 차라리 내가 선택 안 했으면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텐데요. 너무 힘들어요. 나중에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그룹홈으로 이동한지 한 달이 지난 무송이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그룹홈 생활이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그래요’라는 말과 무송이의 표정으로 짐작해 보건대, 진짜 후회한다기 보다는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다' 정도로 해석되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무송이를 힘들게 할까요? "그룹홈 한달 동안 제 습관이 다 무너졌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씻는 것, 이불 개는 것, 건강한 음식 먹는것 등등요. 생활관에서 얻었던 습관이거든요. 사실 같이 방쓰는 친구 A가 있어요. 처음에는 같이 한 방을 쓰는게 좀 걱정이 되었어요. A스타일을 아니깐요. 근데 A도 저를 좋아하고 저도 A랑 좋은 관계를 맺고 싶긴 해요. A는 생활습관이 좀 게으른 편이예요. 같이 잘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생각 같진 않았어요. 도리어 같이 안하게 되더라고요.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 다시 새롭게 생활습관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A랑 같이 하고 싶어서 몇번 제안은 했는데 말을 잘 안 듣네요."
근데 사실 무송이에게 습관보다 더 고민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보통은 자신이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무송이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사실 A도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지만, 같이 지내는 동생 B도 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다섯명 밖에 안되는 그룹홈에서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으니 저는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 같이 지내다 보니 A가 마음이 많은 아픈 친구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친구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공감도 해주었어요. 그렇게 A와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동생 B가 신경이 쓰여요. 걔가 서운해 하는게 눈에 보였거든요. 또 두 사람이 저에게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니 그것을 듣는 게 더 힘들고요. 그래서 서로 화해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다행히 두 사람이 서로 사과를 하긴 했는데 그 이후로 두 사람 사이가 더 어색해졌어요. 아주 미치겠더라고요." 기특해 보이는 무송이의 생각과 행동에 놀라운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왜 무송이는 자신의 일도 아닌 타인들의 관계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
다시 생각을 해보니 무송이의 생활관 시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 아이들과 두루 잘 지냈고 특정한 무리에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무리에는 절대 속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 세품아에 들어와 낯설어하는 친구들이 잘 적응하도록 돕기도 했고, 아이들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도록 중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무송이를 보며 선생님들은 '이놈 평화주의자인가?' 라는 농담도 했습니다. 세품아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이긴 했으니깐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에게 의지가 되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갈등의 상황을 유독 불편해 하는 것 같은 무송이를 보면서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밖에서 생활할 때도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있었니?"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중1후반에요.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힘들었어요. 제가 중재를 하고 싶었지만 잘 안됐고요." "무송이는 이런 상황이 왜 불편한 거 같아?" "누군가 한 명이 버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불편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 좋아요. 제가 어떤 상황이 되면 누구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이 들어요. 길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거절을 못하고요. 티비에 갇혀있는 동물들이 나오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전에는 엄마가 드라마 보며 우시는 것을 봤는데 우는 엄마를 보면서 제가 눈물이 막 나오더라니까요."
무송이가 꿈꾸는 그룹홈의 평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A랑 B랑 서로 장난도 치는 그런 좋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A는 걱정 근심이 많아요. 그런 걱정 안 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래서 더 들어주고 사람들과 이어주고 싶어요." "너만의 방법이 있어?" "서로의 장점을 계속 이야기 해주는 거예요. 그럼 호감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음 ~ 쉽진 않겠다." "누군가의 어려운 얘기를 듣고 서로를 화해시키려고 하는게 저한테는 어려운 일은 아닌거 같아요. 그런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그렇게 되거든요" 공동체의 평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무송이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공동체는 가정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정에서 무송이는 어떤 아들이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하~~~ (한숨을 한번 쉬더니) 제가 여기서 생활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바로 그거예요. 그 때는 가정이 소중한지 몰랐어요. 지금은 아는데요. 그래서 그런 역할을 못했어요. 저희 식구들이 좀 차가운 스타일이거든요.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우리 식구들을 웃게 해주는 그런 애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을 돕는 사람이 될 거예요. 아빠를 돕고 싶어요. 이젠 저도 몸이 컸으니깐 신체적으로 아빠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 같아요. 그런 일을 대신 해드리고 싶어요."
'Peacemaker' 무송이가 이 단어를 알까요? ㅋ 제가 위키백과를 열어봤더니 [(분쟁,전쟁을 종식시키려 애쓰는) 중재자, 조정자] 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무송이와 이야기 하는 내내 이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또 하나의 문장 '문제아가 문제해결자로 !!' 세품아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아직은 갈등 상황 속에 있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무송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픔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한 깨어진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것’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과거에는 가정에 문제를 안겨주는 아들이었다면 이제는 가정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아들이 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무송아! 네가 선택한 일들이 고단하긴 하지만 아주 의미 있는 일이야. Peacemaker로서 무송이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할께."
(글 : 임수미)
10월 24일 (화)
열두번째 이야기
"누군가 한 명이 버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불편해요.
사람들을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이 드는것 같아요"
(그룹홈 생활 한 달째인 무송이 이야기)
"그룹홈 간 걸 후회해요. 차라리 내가 선택 안 했으면 이런 상황에 놓이지 않았을 텐데요. 너무 힘들어요. 나중에는 잘 모르겠지만 지금은 그래요." 그룹홈으로 이동한지 한 달이 지난 무송이는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그룹홈 생활이 어떠냐?'는 나의 질문에 이렇게 대답해 주었습니다. '지금은 그래요’라는 말과 무송이의 표정으로 짐작해 보건대, 진짜 후회한다기 보다는 '지금 상황이 너무 힘들다' 정도로 해석되었습니다. 뭐가 그렇게 무송이를 힘들게 할까요? "그룹홈 한달 동안 제 습관이 다 무너졌어요.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는 것, 씻는 것, 이불 개는 것, 건강한 음식 먹는것 등등요. 생활관에서 얻었던 습관이거든요. 사실 같이 방쓰는 친구 A가 있어요. 처음에는 같이 한 방을 쓰는게 좀 걱정이 되었어요. A스타일을 아니깐요. 근데 A도 저를 좋아하고 저도 A랑 좋은 관계를 맺고 싶긴 해요. A는 생활습관이 좀 게으른 편이예요. 같이 잘하면 되겠지 싶었는데 생각 같진 않았어요. 도리어 같이 안하게 되더라고요. 이러면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저는 지금 다시 새롭게 생활습관을 잡아가고 있는 중이예요. A랑 같이 하고 싶어서 몇번 제안은 했는데 말을 잘 안 듣네요."
근데 사실 무송이에게 습관보다 더 고민되는 것이 있었습니다. 바로 관계의 문제였습니다. 보통은 자신이 타인과 원만한 관계를 맺지 못해 문제가 생기는 경우가 많은데 무송이의 경우는 좀 다릅니다. "사실 A도 저에게 소중한 사람이지만, 같이 지내는 동생 B도 저에게는 소중한 사람이거든요. 근데 다섯명 밖에 안되는 그룹홈에서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으니 저는 그게 너무 힘든 거예요. 같이 지내다 보니 A가 마음이 많은 아픈 친구라는 걸 알게 됐어요. 그래서 그 친구 이야기도 많이 들어주고 공감도 해주었어요. 그렇게 A와 많은 시간을 보내다보니 동생 B가 신경이 쓰여요. 걔가 서운해 하는게 눈에 보였거든요. 또 두 사람이 저에게 서로에 대해 부정적인 얘기를 하니 그것을 듣는 게 더 힘들고요. 그래서 서로 화해를 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었어요. 다행히 두 사람이 서로 사과를 하긴 했는데 그 이후로 두 사람 사이가 더 어색해졌어요. 아주 미치겠더라고요." 기특해 보이는 무송이의 생각과 행동에 놀라운 마음도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이런 의문이 들었습니다. 보통 사람들이 사는 공동체에서는 이렇게 갈등이 생기기 마련인데, 왜 무송이는 자신의 일도 아닌 타인들의 관계에 이렇게 힘들어 하는 걸까?
다시 생각을 해보니 무송이의 생활관 시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여러 아이들과 두루 잘 지냈고 특정한 무리에 깊이 들어가지도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부정적인 행동을 하는 무리에는 절대 속하는 법이 없었습니다. 그는 처음 세품아에 들어와 낯설어하는 친구들이 잘 적응하도록 돕기도 했고, 아이들이 서로 불편한 관계가 되지 않도록 중재를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무송이를 보며 선생님들은 '이놈 평화주의자인가?' 라는 농담도 했습니다. 세품아에서 보기 드문 캐릭터이긴 했으니깐요. 그래서 그런지 선생님들에게 의지가 되는 친구이기도 했지만 갈등의 상황을 유독 불편해 하는 것 같은 무송이를 보면서 걱정되는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었습니다. "밖에서 생활할 때도 이렇게 불편함을 느끼는 상황이 있었니?" "네, 그랬던 것 같아요. 중1후반에요. 친구 두 명이 있었는데 그 두 사람이 서로 사이가 좋지 않아 힘들었어요. 제가 중재를 하고 싶었지만 잘 안됐고요." "무송이는 이런 상황이 왜 불편한 거 같아?" "누군가 한 명이 버려지는 것 같은 생각이 들어 불편해요. 그런 생각을 하면 마음이 안 좋아요. 제가 어떤 상황이 되면 누구가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많이 들어요. 길에서 몸이 불편한 사람이 도움을 청하면 거절을 못하고요. 티비에 갇혀있는 동물들이 나오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전에는 엄마가 드라마 보며 우시는 것을 봤는데 우는 엄마를 보면서 제가 눈물이 막 나오더라니까요."
무송이가 꿈꾸는 그룹홈의 평화는 어떤 모습일지 궁금해졌습니다. "A랑 B랑 서로 장난도 치는 그런 좋은 관계가 됐으면 좋겠어요. 특히 A는 걱정 근심이 많아요. 그런 걱정 안 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그래서 더 들어주고 사람들과 이어주고 싶어요." "너만의 방법이 있어?" "서로의 장점을 계속 이야기 해주는 거예요. 그럼 호감을 가지게 되더라고요." "음 ~ 쉽진 않겠다." "누군가의 어려운 얘기를 듣고 서로를 화해시키려고 하는게 저한테는 어려운 일은 아닌거 같아요. 그런 상황이 되면 자동으로 그렇게 되거든요" 공동체의 평화를 무엇보다 중요하게 여기는 무송이에게 어쩌면 가장 중요한 공동체는 가정이 아니었을까 싶어 가정에서 무송이는 어떤 아들이었는지가 궁금해졌습니다. "하~~~ (한숨을 한번 쉬더니) 제가 여기서 생활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게 바로 그거예요. 그 때는 가정이 소중한지 몰랐어요. 지금은 아는데요. 그래서 그런 역할을 못했어요. 저희 식구들이 좀 차가운 스타일이거든요. 나중에 집에 돌아가면 우리 식구들을 웃게 해주는 그런 애교 있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그리고 무엇보다도 가장을 돕는 사람이 될 거예요. 아빠를 돕고 싶어요. 이젠 저도 몸이 컸으니깐 신체적으로 아빠 대신 할 수 있는 일이 많을 거 같아요. 그런 일을 대신 해드리고 싶어요."
'Peacemaker' 무송이가 이 단어를 알까요? ㅋ 제가 위키백과를 열어봤더니 [(분쟁,전쟁을 종식시키려 애쓰는) 중재자, 조정자] 라는 설명이 나와 있었습니다. 무송이와 이야기 하는 내내 이 단어가 머릿속을 맴돌았습니다. 그리고 생각나는 또 하나의 문장 '문제아가 문제해결자로 !!' 세품아의 정체성을 설명해주는 문장 중 하나입니다. 아직은 갈등 상황 속에 있는 것 만으로도 스트레스라고 말하는 무송이지만, 그는 그 안에서 자신의 역할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고 있는 듯 했습니다. ‘아픔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또한 깨어진 서로를 이어줄 수 있는 것’ 어른들도 하기 힘든 일이잖아요. 과거에는 가정에 문제를 안겨주는 아들이었다면 이제는 가정을 따뜻하게 만들어 주는 아들이 되고 싶어하는 그의 마음이 고스란히 느껴졌습니다. "무송아! 네가 선택한 일들이 고단하긴 하지만 아주 의미 있는 일이야. Peacemaker로서 무송이의 삶을 축복하고 응원할께."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