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07일 (화)
열세번째 이야기
"그거 아세요? 저 세품아에 들어와서 처음 해본 게 너무 많아요
책도 처음 읽고요. 농구도 처음 해봤어요.
축구도 아주 어릴 때 해보고 오랜만에 다시 했고요.
7km 마라톤도 처음 해봤어요.
기타도 노래도 처음 해봤고, 공부란 것도 처음 해본 거에요"
(생활관의 맏형 수빈이 이야기)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기 마련입니다. 날마다 부어주는 물에 소리없이 쑥쑥 자라는 콩나물 같은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특별한 계기가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근데 그 계기라는것이 좀 애매한데요;;;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생겨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생전 처음 해보는 도전들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 계기가 되어 성장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인데요. 오늘의 주인공도 바로 이 후자의 경우입니다.
19살 수빈이는 생활관의 맏형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은 없으며, 아빠와 두 명의 누나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누나들은 일찍이 독립을 했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지만 그의 방황과 범죄로 인해 아버지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수빈이의 가출도 반복되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시골에 계시는 할머님댁과 수빈이가 살고 있는 집을 번갈아가며 살게 되시면서 수빈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나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로 부터 용돈을 받기가 어려워지고 누군가로 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자, 어린 나이지만 빨리 경제적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자연스레 도박에 손을 대게 만들었습니다. 돈을 손에 넣기 위해 시작한 도박이지만 결과는 그의 생각처럼 되질 않았고, 그 잃은 돈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해야만 했습니다. 알바를 해서 돈이 생기면 다시 도박에 손을 댔고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나봅니다. 또한 도마뱀을 키워 재테크를 하기도 하는 등 어린 나이의 수빈이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고,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낀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수빈이는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공부가 지루했고 자신은 공부에 가망이 없음을 일찍이 깨닫기도 했습니다.
키도 크고 훈남외모로 뭐든지 잘 할 거 같이 생긴 수빈이가 세품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누구나 거치게 되는 ‘신입과정’을 유독 힘들어 했습니다. “저 세품아 들어와서 책 처음 읽어봐요. 앉아서 책 읽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책읽는 것 보다 더 어려운게 퍼즐 맞추는 거더라고요.(세품아 신입과정에는 책 읽고 글 쓰기, 퍼즐 맞추기등 아이의 학습능력을 체크해 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꼭 읽어야 할 거 같은, 그리고 꼭 맞춰야 할 거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셔서 하긴 했는데요. 그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수빈이는 세품아에 적응해 갔지만, 특별한 노력보다는 그냥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6개월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추가건이 떴다’ (이전에 했던 범죄의 경찰조사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요. 보통은 추가건을 조사하기 위해선 경찰분들이 세품아에 방문해 주시는 것이 보통인데, 수빈이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를 위해 경찰서로 가게 되었고, 기나긴 조사와 함께 곧 구속이 될거라는 검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잔뜩 쫄아있는 판에 설상가상,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빈이는 조사 후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낯설고 차가운 유치장에서 수빈이는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도 안 다니는데 기도가 다 나오더라고요. 한번 만 더 기회가 있었으면, 다시 세품아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다행히 그 날 새벽, 대표님의 도움으로 수빈이는 세품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아직 해결된 건 아니지만 세품아로 다시 돌아 왔다는 것 만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다음 날 부터 수빈이의 생활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쫄린 경험을 해서 그런가 제대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빈이가 생각하는 ‘제대로 사는 것’의 첫 번째는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똑똑수업 때 제 스스로가 읽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알았어요.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다해도 공부 못하는 게 부끄러울거 같아요. 같이 지내는 동생들 보기에도 창피하고요. 지금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는데요. 고졸 검정고시 꼭 따고 싶어요.“ 이렇게 기특한 생활을 한 지 한달 후 수빈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거 아세요? 저 세품아에 들어와서 처음 해본 게 너무 많아요. 책도 처음 읽고요. 농구도 처음 해봤어요. 축구도 아주 어릴 때 해보고 오랜만에 다시 했고요. 7Km 마라톤도 처음 해봤어요. 기타도 노래도 처음 해봤고, 공부란 것도 처음 해본거예요.“ ‘처음 해봤다…?’ 여느 가정이었다면 어릴 때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일들을 수빈이는 처음 해 보는 거구나… 그리고 그가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선택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릴때 부터 해왔던 그냥 그런 평범한 일들이라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조금 씁씁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달 전이랑 달라진 게 뭐가 있어?“ ”성숙해진 것 까지는 모르겠고요. 지금은 최소한 시간은 낭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전에는 자고,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냈는데요. 지금은 그 시간을 채우려고 해요. 내가 달라지는 그 뭔가들로요. 그래서 주어지는 것들을 다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저 여기와서 책 처음 읽었다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사실 처음에는 책을 5장도 못 읽었는데요. 지금은 한 번에 150장은 거뜬히 읽을 수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 있니?“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싫은 것, 머리 쓰는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서 처음 해본 것들, 나에게 도움이 됐던 것들을 밖에서는 못할 것 같아서 세품아에 오래 있고 싶어요.“
사실 수빈이의 행동을 ‘변화’라고 말할 순 없겠죠. 고작 한 달여 지속된 일들이니깐요. 도리어 ‘시작’이라는 표현이 더욱 잘 어울릴 거 같습니다. 돌 지난 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것 같은 시작!! 난생 처음 해보는 일들, 그리고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일들의 시작말입니다. ”수빈아! 너의 첫 걸음마에 박수 치며 기뻐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너의 시작을 응원할께.” (글 : 임수미)
11월 07일 (화)
열세번째 이야기
"그거 아세요? 저 세품아에 들어와서 처음 해본 게 너무 많아요
책도 처음 읽고요. 농구도 처음 해봤어요.
축구도 아주 어릴 때 해보고 오랜만에 다시 했고요.
7km 마라톤도 처음 해봤어요.
기타도 노래도 처음 해봤고, 공부란 것도 처음 해본 거에요"
(생활관의 맏형 수빈이 이야기)
누구에게나 인생의 터닝포인트가 있기 마련입니다. 날마다 부어주는 물에 소리없이 쑥쑥 자라는 콩나물 같은 친구들이 있는가 하면, 특별한 계기가 삶의 변화를 가져다 주는 경우도 종종 보게 됩니다. 근데 그 계기라는것이 좀 애매한데요;;; 나를 믿어주는 존재가 생겨 그를 실망시키지 않기 위해 생전 처음 해보는 도전들로 성장의 계기를 마련하는 친구가 있는가 하면, 대부분은 사고를 너무 많이 쳐서 더 이상의 선택의 여지가 없는 선택이 계기가 되어 성장을 시작하게 되는 경우인데요. 오늘의 주인공도 바로 이 후자의 경우입니다.
19살 수빈이는 생활관의 맏형입니다. 어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라는 존재에 대한 기억은 없으며, 아빠와 두 명의 누나와 함께 살았습니다. 그러다 누나들은 일찍이 독립을 했고, 아버지와 단둘이 살았지만 그의 방황과 범죄로 인해 아버지와의 갈등이 깊어지면서 수빈이의 가출도 반복되었습니다. 이후 아버지가 시골에 계시는 할머님댁과 수빈이가 살고 있는 집을 번갈아가며 살게 되시면서 수빈이는 혼자 있는 시간이 더욱 많아졌고, 그 외로움을 달래기 위해 밤마다 나가 친구들을 만나기 시작했습니다. 아버지로 부터 용돈을 받기가 어려워지고 누군가로 부터 도움을 받을 수 없다고 판단되자, 어린 나이지만 빨리 경제적 독립을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고, 그 생각은 자연스레 도박에 손을 대게 만들었습니다. 돈을 손에 넣기 위해 시작한 도박이지만 결과는 그의 생각처럼 되질 않았고, 그 잃은 돈을 갚기 위해 알바를 해야만 했습니다. 알바를 해서 돈이 생기면 다시 도박에 손을 댔고요.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유혹을 뿌리치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나봅니다. 또한 도마뱀을 키워 재테크를 하기도 하는 등 어린 나이의 수빈이는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꽉 차 있었고, 돈을 버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부족하다는 느낀 그는 고등학교를 자퇴해 버렸습니다. 그러나 사실 수빈이는 초등학교 2학년때 부터 공부가 지루했고 자신은 공부에 가망이 없음을 일찍이 깨닫기도 했습니다.
키도 크고 훈남외모로 뭐든지 잘 할 거 같이 생긴 수빈이가 세품아에 처음 들어왔을 때 누구나 거치게 되는 ‘신입과정’을 유독 힘들어 했습니다. “저 세품아 들어와서 책 처음 읽어봐요. 앉아서 책 읽는게 너무 힘들었어요. 근데 책읽는 것 보다 더 어려운게 퍼즐 맞추는 거더라고요.(세품아 신입과정에는 책 읽고 글 쓰기, 퍼즐 맞추기등 아이의 학습능력을 체크해 보는 과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선생님이 꼭 읽어야 할 거 같은, 그리고 꼭 맞춰야 할 거 같은 표정으로 바라보셔서 하긴 했는데요. 그 때 너무 힘들었어요.“ 그렇게 수빈이는 세품아에 적응해 갔지만, 특별한 노력보다는 그냥 그렇게 시간을 견디며 6개월이 빨리 지나가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추가건이 떴다’ (이전에 했던 범죄의 경찰조사가 지금 진행되고 있다)는 연락을 받기 전까지는요. 보통은 추가건을 조사하기 위해선 경찰분들이 세품아에 방문해 주시는 것이 보통인데, 수빈이의 경우는 좀 달랐습니다. 그는 경찰 조사를 위해 경찰서로 가게 되었고, 기나긴 조사와 함께 곧 구속이 될거라는 검사님의 전화를 받게 되었습니다.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에 잔뜩 쫄아있는 판에 설상가상, 도주의 우려가 있다는 이유로 수빈이는 조사 후 경찰서 유치장에서 하룻밤을 보내게 되었습니다. 낯설고 차가운 유치장에서 수빈이는 잠이 오질 않았습니다. ”제가 교회도 안 다니는데 기도가 다 나오더라고요. 한번 만 더 기회가 있었으면, 다시 세품아로 돌아갈 수 만 있다면…“
다행히 그 날 새벽, 대표님의 도움으로 수빈이는 세품아로 돌아오게 되었습니다. (사건은 지금도 진행중에 있습니다) ”아직 해결된 건 아니지만 세품아로 다시 돌아 왔다는 것 만으로도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너무 좋았어요.“ 다음 날 부터 수빈이의 생활은 180도로 바뀌었습니다. ”쫄린 경험을 해서 그런가 제대로 살아야 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수빈이가 생각하는 ‘제대로 사는 것’의 첫 번째는 책을 읽는 것이었습니다. ”똑똑수업 때 제 스스로가 읽는 것이 힘들다는 걸 알았어요. 기본적인 공부는 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열심히 일해서 성공한다해도 공부 못하는 게 부끄러울거 같아요. 같이 지내는 동생들 보기에도 창피하고요. 지금 공부도 조금씩 하고 있는데요. 고졸 검정고시 꼭 따고 싶어요.“ 이렇게 기특한 생활을 한 지 한달 후 수빈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그거 아세요? 저 세품아에 들어와서 처음 해본 게 너무 많아요. 책도 처음 읽고요. 농구도 처음 해봤어요. 축구도 아주 어릴 때 해보고 오랜만에 다시 했고요. 7Km 마라톤도 처음 해봤어요. 기타도 노래도 처음 해봤고, 공부란 것도 처음 해본거예요.“ ‘처음 해봤다…?’ 여느 가정이었다면 어릴 때 한번쯤은 경험해 봤을 일들을 수빈이는 처음 해 보는 거구나… 그리고 그가 좀 다르게 살아보려고 선택한 일들이 누군가에게는 어릴때 부터 해왔던 그냥 그런 평범한 일들이라는 사실에 마음 한켠이 조금 씁씁하게 느껴졌습니다.
”한 달 전이랑 달라진 게 뭐가 있어?“ ”성숙해진 것 까지는 모르겠고요. 지금은 최소한 시간은 낭비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전에는 자고,멍 때리면서 시간을 보냈는데요. 지금은 그 시간을 채우려고 해요. 내가 달라지는 그 뭔가들로요. 그래서 주어지는 것들을 다 열심히 해보려고 하고 있어요. 저 여기와서 책 처음 읽었다고 했던 거 기억나시죠? 사실 처음에는 책을 5장도 못 읽었는데요. 지금은 한 번에 150장은 거뜬히 읽을 수 있어요.“ ”앞으로의 계획 있니?“ ”지금의 상태를 유지하면서 싫은 것, 머리 쓰는 것에 도전해 보고 싶어요. 그리고 여기서 처음 해본 것들, 나에게 도움이 됐던 것들을 밖에서는 못할 것 같아서 세품아에 오래 있고 싶어요.“
사실 수빈이의 행동을 ‘변화’라고 말할 순 없겠죠. 고작 한 달여 지속된 일들이니깐요. 도리어 ‘시작’이라는 표현이 더욱 잘 어울릴 거 같습니다. 돌 지난 아이가 걸음마를 떼는 것 같은 시작!! 난생 처음 해보는 일들, 그리고 도움이 된다고 느끼는 일들의 시작말입니다. ”수빈아! 너의 첫 걸음마에 박수 치며 기뻐하는 선생님들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 너의 시작을 응원할께.”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