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9일 (화)
열다섯번째 이야기
" '금쪽이가 사람됐어요.'라고 넣어주세요 "
(1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룹홈 막내 진호 이야기)
혹시 올해 6월에 받아보셨던 저널 '생활관 귀요미 진호이야기' [제목: 5학년 때 학교로 찾아온 경찰에게서 '이렇게 하다간 교도소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기억하시나요? 작년 14살 나이로 세품아에 들어와 제법 기특한 모습으로 적응했던 진호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 생활관에서 그룹홈으로의 이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요. 그랬던 진호가 벌써 그룹홈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이번주 집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진호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지난번에는 '저를 착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말아주세요. 아직 부족하고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예요. 그리고 노력도 할거고요.' 라는 말을 꼭 저널에 넣어 달라고 했는데요. 이번에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금쪽이가 사람됐어요.' 라고 넣어주세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진호가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변했을까?' 보다 본인을 금쪽이로 인식하고 있는 진호에게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룹홈 생활 4개월이 지났을때 진호가 민망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읽는 것 자체는 익숙해 졌는데요. 아는 단어가 없으니 읽은 내용이 이해가 안가요. 답답하죠. 저 약간 심각해요. 읽으면서 계속 질문을 해야하니 힘들어요." 그리고 연이어 나온 진호의 얘기는 저를 좀 놀라게 했습니다. "요즘 밖에 있는 친구들 소식을 좀 들었는데, 여전히 범죄하고 시설에 가는 친구들이 있어요. 전에는 이런 얘기 들으면 나만 잘하면 되는거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가상의 생각이었어요. 현실은 내가 단순히 노력한다고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잘 산다는게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예요." 그룹홈 막내 진호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 깊이 있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조금은 무모하고 감정 가득한 생각에서 점점 현실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변하는 것이 이곳에서 회복되어 가는 친구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진호에게는 말 못할 고민도 있습니다. "학교를 다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학교에서 이미 찍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이 이미 그런 눈으로 보실거 같아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돼요. 제가 바라는 게 평범하게 사는건데 평범하게 사는게 쉬운일 같지가 않아요. 안해봐서요." 그룹홈 담당 선생님도 초기에는 진호가 나이가 어려 그룹홈 생활이 가능할지 걱정도 많이 했었지만 6개월 간 진호에게 너무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고 귀띔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밖으로 나가 평범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연료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세품아에서 자제력을 배운거 같아요. 화났을 때 제일 필요한 게 자제력이죠. 그냥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있는것, 아니 그냥 참는 게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자신없긴 한데요. 혹시 어려운 상황이 오면 그냥 무조건 참지 말고 얘기를 해보려고요. 그냥 참아서는 바뀌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정답을 알고 있지만, 정답처럼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쯤 진호는 세품아에서 1년을 살면서 가장 크게 배운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범위가 넓어졌다는 거요. 생각을 해야하는 것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때로는 생각없이 살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아 ~ 그건 싫다' 싶어요. 전에는 실수를 했을 때 처벌만을 두려워했어요. 근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게 진짜 어렵다는 걸 배웠어요.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거요. 관계를 배운거 같아요. 아~~~~ 이렇게 한 가지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생각으로 옮겨가는 것, 이게 젤 머리 아파요."
그룹홈 '아이브러리' 수업 중 '병자호란'을 소재로 하여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뽑아 수업을 준비하고 발표를 했었는데요. 진호의 주제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의 참화속에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과 공포속에 노출된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진호의 마음을 붙잡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어떤 상황이든 간에 어린 아이들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제 귀에는 깊은 방황끝에 어렵게 만난 어린 자신에게 위로 하듯 해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3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져야 했고, 어린 아들앞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그런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편의점 물건을 절도 하면서도 '내가 배고파서 가져 온 건데 이게 무슨 문제지?' 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님에게 용돈은 받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배우지 못했다는 걸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아이가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할 수는 없겠지만 '진호의 인생도 참 아팠겠구나' 싶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문제가 있는 아이로서의 금쪽이가 아닌 본래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금쪽(아주 귀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진호가 되길 바래봅니다. (글 : 임수미)
12월 19일 (화)
열다섯번째 이야기
" '금쪽이가 사람됐어요.'라고 넣어주세요 "
(1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그룹홈 막내 진호 이야기)
혹시 올해 6월에 받아보셨던 저널 '생활관 귀요미 진호이야기' [제목: 5학년 때 학교로 찾아온 경찰에게서 '이렇게 하다간 교도소 갈 수 있다'라는 말을 듣고 이렇게 살면 안되겠다는 생각을 처음 했어요]기억하시나요? 작년 14살 나이로 세품아에 들어와 제법 기특한 모습으로 적응했던 진호의 이야기였습니다. 그 때, 생활관에서 그룹홈으로의 이동을 계획하고 있었는데요. 그랬던 진호가 벌써 그룹홈 생활 6개월을 마치고 이번주 집으로 돌아갈 예정입니다.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 진호이야기를 들려드릴께요.
지난번에는 '저를 착한 사람으로 표현하지 말아주세요. 아직 부족하고 노력이 필요한 사람이예요. 그리고 노력도 할거고요.' 라는 말을 꼭 저널에 넣어 달라고 했는데요. 이번에도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금쪽이가 사람됐어요.' 라고 넣어주세요."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진호가 이야기합니다. '얼마나 변했을까?' 보다 본인을 금쪽이로 인식하고 있는 진호에게 더 마음이 갔습니다. 그룹홈 생활 4개월이 지났을때 진호가 민망한 표정으로 이야기했습니다. "이제 읽는 것 자체는 익숙해 졌는데요. 아는 단어가 없으니 읽은 내용이 이해가 안가요. 답답하죠. 저 약간 심각해요. 읽으면서 계속 질문을 해야하니 힘들어요." 그리고 연이어 나온 진호의 얘기는 저를 좀 놀라게 했습니다. "요즘 밖에 있는 친구들 소식을 좀 들었는데, 여전히 범죄하고 시설에 가는 친구들이 있어요. 전에는 이런 얘기 들으면 나만 잘하면 되는거지라는 생각을 했는데 그건 가상의 생각이었어요. 현실은 내가 단순히 노력한다고 쉽게 바뀌지는 않는 것 같아요. 개인의 노력만으로 환경을 바꿀 수는 없다고 생각해요. 잘 산다는게 그만큼 쉬운 일은 아니예요." 그룹홈 막내 진호 입에서 나왔다고 하기엔 너무 깊이 있는 깨달음이었습니다. 조금은 무모하고 감정 가득한 생각에서 점점 현실을 인식하는 방향으로 생각이 변하는 것이 이곳에서 회복되어 가는 친구들이 보여주는 중요한 특징 중 하나입니다.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이 행복한 일이기도 하지만 진호에게는 말 못할 고민도 있습니다. "학교를 다시 잘 다닐 수 있을지 걱정이예요. 학교에서 이미 찍혀서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선생님들이 이미 그런 눈으로 보실거 같아요. 잘 할 수 있을지 고민돼요. 제가 바라는 게 평범하게 사는건데 평범하게 사는게 쉬운일 같지가 않아요. 안해봐서요." 그룹홈 담당 선생님도 초기에는 진호가 나이가 어려 그룹홈 생활이 가능할지 걱정도 많이 했었지만 6개월 간 진호에게 너무 많은 변화와 성장이 있었다고 귀띔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변화가 밖으로 나가 평범하게 산다는 것에 대한 연료로는 터무니없이 부족하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세품아에서 자제력을 배운거 같아요. 화났을 때 제일 필요한 게 자제력이죠. 그냥 감정을 표현하는 게 아니라 참을 수 있는것, 아니 그냥 참는 게 아니라 말로 설명할 수 있는 게 중요해요. 학교에서 선생님들과의 관계가 자신없긴 한데요. 혹시 어려운 상황이 오면 그냥 무조건 참지 말고 얘기를 해보려고요. 그냥 참아서는 바뀌는 게 하나도 없더라고요." 정답을 알고 있지만, 정답처럼 산다는 것이 그리 쉽지 않겠구나 라는 생각을 할 때 쯤 진호는 세품아에서 1년을 살면서 가장 크게 배운것이 있다고 말합니다.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 그리고 그 범위가 넓어졌다는 거요. 생각을 해야하는 것 때문에 머리가 아파요. 때로는 생각없이 살았던 때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들다가도 '아 ~ 그건 싫다' 싶어요. 전에는 실수를 했을 때 처벌만을 두려워했어요. 근데 지금은 누군가에게 피해를 주면 다시 관계를 회복하는게 진짜 어렵다는 걸 배웠어요. 얻는 것 보다 잃는 게 더 많다는거요. 관계를 배운거 같아요. 아~~~~ 이렇게 한 가지를 생각하면 여러가지 생각으로 옮겨가는 것, 이게 젤 머리 아파요."
그룹홈 '아이브러리' 수업 중 '병자호란'을 소재로 하여 아이들이 자신이 원하는 주제를 뽑아 수업을 준비하고 발표를 했었는데요. 진호의 주제는 [어린아이]였습니다. 전쟁의 참화속에 추위와 배고픔, 외로움과 공포속에 노출된 어린 아이들의 모습이 진호의 마음을 붙잡은 듯 보였습니다. 그러고는 마지막 자신이 하고 싶은 말로 '어떤 상황이든 간에 어린 아이들은 사랑받고 보호받아야 합니다' 라고 말했는데, 제 귀에는 깊은 방황끝에 어렵게 만난 어린 자신에게 위로 하듯 해주는 말처럼 들렸습니다. 3살 때 부모님의 이혼으로 엄마와 헤어져야 했고, 어린 아들앞에서도 아무 거리낌 없이 담배를 피워대는 그런 아버지의 보살핌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초등학교 3학년 때 편의점 물건을 절도 하면서도 '내가 배고파서 가져 온 건데 이게 무슨 문제지?' 라는 생각을 했었고요.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서 부모님에게 용돈은 받았지만 세상을 살아가는데 필요한 것들은 배우지 못했다는 걸 그때서야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런 환경이 아이가 저지른 범죄를 합리화할 수는 없겠지만 '진호의 인생도 참 아팠겠구나' 싶었습니다. 스스로 자신을 문제가 있는 아이로서의 금쪽이가 아닌 본래의 단어가 가지고 있는 금쪽(아주 귀한 것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이로 스스로를 인식하는 진호가 되길 바래봅니다. (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