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스무번째] 안연빈, 황규태 인턴 이야기

관리자
2024-02-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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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월 27일 (화)    

스무번째 이야기    





“ 추운 겨울 함께 보낸 세품아, 고맙습니다! ”  

(세품아 인턴 이야기)




매번 나오는 저널을 유심히 보시는 분이라면 이미 눈치채셨겠지만, 올 1월 부터 나오는 저널의 주인공 모두가 세품아 교사였습니다. 혼란을 겪으며 세품아에 적응중인 명희수 선생님, 목회자 출신의 허복음 선생님, 그리고 세품아의 청결을 책임져 주시는 명진영 고모님에 이어, 교사 시리즈 마지막 주인공은 올 1, 2월을 세품아와 함께 해 주신 두 분의 인턴, 안연빈 선생님(24)과 황규태 선생님(27)이십니다. 인턴 생활 3일을 남겨두고 계신 두 분의 마음속 이야기를 함께 들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이번 겨울 세품아에 머물렀던 안연빈입니다. 내가 어쩌다 세품아에 왔을까 생각하니, 그간 사회복지 공부하며 다양한 곳에서 아이들 만났던 경험이 떠오릅니다. 소중하고 그리운 기억들이 가득합니다. ‘마땅한 사회복지 실천’과 ‘아이를 어떻게 만나야 하는가’를 생각하며 여기저기 배움을 좇아다녔습니다.


그러다 한 기관에서 일을 하게 됐는데, 많이 어려웠습니다. 아이를 만나며 소중하게 생각해왔던 신념을 그곳에서 하나도 지켜낼 수가 없었습니다. 당시 그런 어려움을 잘 풀어낼 지혜가 없었던 저는 도망치듯 일을 그만두었습니다. 주변 사람 모두 저를 위로해주고 같이 기관 욕도 해주고 그랬는데, 딱 한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왜 거기 갔어요? 그것도 연빈의 선택 아니었나요? 자신과 맞는 기관을 알아보는 것도 실력입니다.” 틀린 말 하나 없는 선생님 말씀을 담담히 받아들였고, 그때부터 진지하게 내가 가야 할 곳과 내가 만날 아이들을 위해 현실적인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그러다 적절한 때를 만나 세품아에 왔습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세품아는 기관이라기보단 공동체에 가까웠습니다. 냉정한 직장생활을 각오하고 온 저는 놀랄 때가 많았습니다. 세품아 대표님과 이사장님, 그리고 선생님들께 받은 관심과 애정이 많습니다. ‘내가 이런 존중까지 받아도 되나?’하는 생각이 ‘더 열심히 해야지!’하는 생각으로 이어졌습니다.


두 달 사이 저에겐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먼저, 저는 원래 식전기도를 하는 사람이 아닌데 세품아에서 밥을 먹을 때면 기도를 합니다. 할 뿐 아니라 길어집니다. “하나님 오늘 ㅇㅇ이가 기운이 없어요. 힘을 좀 주세요. 하나님 오늘도 ㅇㅇ이와 수업 잘할 수 있도록 도와주세요. 하나님 오늘도 밥 먹고 힘내서 아이들 귀하게 만날 수 있게 해주세요.” 하면서요. 아이들이 신앙심 훌륭하지 않은 저를 하나님에게 멀어지지 않도록 도와줍니다.


세품아에 와서 새로운 고민도 하는데 그중 하나는 ‘교육’입니다. 이제껏 아이들을 만나며 한 번도 저를 가르치는 사람이라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 생각에는 나름의 이유도 있었고요. ‘교육, 교사, 가르친다...’ 이런 말들을 꺼낼 때마다 입이 무척 군색합니다. 나 같은 사람에게도 어울리는 교육의 모습이 있을까 고민하며 공부하기 시작했습니다. 오래 교직에 계셨지만 ‘아이들은 가르치는 존재가 아니’라 말씀하셨던 이오덕 선생님의 책과 오랜 세월 우리나라 대안 교육 운동을 해 온 <민들레> 출판사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지금은 교육에 어떠한 일가견도 없지만, 앞으로 어떤 생각을 쌓아가게 될지 기대가 됩니다. 아이들이 저를 책 읽고 공부하게 이끌어줍니다.


아이들에게 받은 마음과 배움을 다 적으려면 글이 한없이 길어집니다. 못다한 말들을 애써 삼키고 마음에 꾹 눌러 담습니다. 세품아는 ‘교사의 변화가 아이의 변화’라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많은 변화를 경험했는데 아이들은 어땠을까요? 잘 모르겠지만, 아이 마음속에 그저 작은 씨앗이라도 심어졌기를 바랍니다.


추운 겨울 함께 보낸 세품아, 고맙습니다!  (인턴 안연빈) 




안녕하세요:) 세품아의 인턴 선생님 황규태입니다. 벌써 인턴 생활을 마칠 시간이 온다고 생각하니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저처럼 아이들도 많이 아쉬워 할거라고 믿습니다ㅎㅎ 저는 학부에서 종교학과 철학을 전공하고 지금은 대학원에서 철학을 공부하고 있습니다. 평소 교육이나 청소년 사역 등에 관심을 갖고 있지는 않았지만, 철학적 성찰과 복음의 가르침을 삶으로 살아내는 '실천'에 관심이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세품아를 알게 되어 인턴으로 함께하게 되었고, 오늘은 이곳에서 두 달간 지내면서 느끼고 생각한 바를 나눠보려고 합니다.


세품아를 처음 알게 된 것은 유튜브 하이머스타드 영상을 통해서였습니다. 영상을 보고 세품아에 대한 알 수 없는 끌림을 느꼈습니다. 세품아를 검색하며 이런 저런 내용을 찾아보면서 그 끌림은 더욱 커져 갔습니다. 세품아의 오고 나서 그 끌림이 어디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세품아는 하나로 정의내릴 수 없는 공동체라는 것입니다.


세품아는 단순히 6호처분을 받은 아이들이 보호관찰을 받는 감호 시설이라고 할 수 없습니다. 그보다는 아이들의 성장과 교육을 위해 노력하는 대안학교와 같은 곳이지요. 그런데 선생님들도 다같이 동아리 활동에 참여하는 것을 보면 학교라는 이름도 세품아를 담기에 부족합니다. 선생님과 학생, 나아가 모든 구성원들이 함께 어울리고 삶을 공유하는 가족이자 마을 공동체가 세품아에 더욱 어울리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현대의 사고방식으로 보면 이상한 현상입니다. 현대인은 명확하게 규정된 것에서 만족감과 안정감을 느낍니다. 실험을 통해 검증되어 오류가 없는 것을 진리로 받아들이려는 과학적 사고방식의 영향을 받은 것이죠. 그런데 삶이라는 것은 본디 그러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로 정의하기 어렵고, 알다가도 모르겠는 일로 가득합니다. 그래서 항상 애매하고 모호한 것이 삶의 본모습일 것입니다.


세품아의 요상한 정체성은 이러한 삶의 본모습을 담아내고 있었고, 이것이 바로 저를 세품아로 이끈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무언가 알 수 없고 하나로 정의하기 어려운 것은 우리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알고자 하는 욕구를 불러일으킵니다. 그리고 우리로 하여금 그 호기심을 충족하기 위해 나아가게 만듭니다. 그렇기에 제가 세품아 영상을 보고 나도 이 공동체에 몸 담고 싶다고 생각한 것이겠지요. 요상하지만 매력적인 곳에 머물면서 삶의 참 모습을 누릴 수 있어 행복한 시간이었습니다.


세품아에서는 또한 '대화'라는 모험에 뛰어드는 것을 배울 수 있었습니다. 세품아에 오면서 아이들에게 도움을 주고 아이들의 변화를 이끌어내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이들과 대화를 하다보면 그러한 시도가 철저히 실패하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대화라는 것은 원래 한 쪽이 일방적으로 주도할 수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아이들은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질문을 던지고, 저의 질문에 대한 아이들의 답변도 예측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대화를 주도하는 능동적 위치가 아니라 아이들의 말에 영향을 받고 그에 맞춰 저의 답을 말해야 하는 수동적 위치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한 대화 속에서 경험한 것은 저의 변화였습니다. 질문과 대답을 주고받으며 아이들의 관점에서 생각하고 상황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를 통해 보다 폭넓은 관점에서 아이들과 아이들이 처한 삶을 이해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한 저의 변화와 성장을 보고 아이들도 마음의 문을 열고 저와의 대화의 자리로 나아왔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이 바로 '교사의 변화가 아이의 변화로'라는 말이 담고 있는 의미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습니다.


놀라운 것은 이러한 저의 변화와 성장이 저 자신의 의지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오히려 아이들과의 상호작용 속에서 수동적으로 변화를 '겪게'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 맞을 것입니다. 이런 점에서 본다면 대화는 내가 의도하지 않은 결론으로 나를 이끌어 가는 모험과도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대화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 모험에 용감하게 나를 던진다는 것을 의미하겠지요. 


세품아에서의 삶은 매일매일이 이러한 모험으로 가득찬 순간이었습니다. 여기서 배운 소중한 경험을 가지고 앞으로도 대화의 모험에 기꺼이 뛰어들 것을 다짐해봅니다.  (인턴 황규태)


찬찬히 보려고 하고 들으려고 하며,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두 분의 모습이 너무 아름다웠습니다. 세품아와 함께 했던 시간이 앞으로 두 분의 인생에 행복하고 지혜로운 기억으로 남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글 :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