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8.08 (화)
일곱번째 이야기
"밖에서 생활할 때 나에게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폭력을 썼어요.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거든요."
(생활관 4개월차 동경이 이야기)
16살 동경이는 세품아에 들어온지 4개월 차 생활관 친구입니다.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동경이는 늘 힘없고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밖에서 힘있는 아이들에게 늘 돈을 가져다 주고, 심부름을 했던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렀지만, 세품아에 적응을 하면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봇물처럼 쏟아내는 수다쟁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려웠고, 심지어는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까지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건 혼자 사는 방법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관계의 무기력함을 보이곤 했습니다.
타인의 무례함에도 저항을 하지 못하던 그가 유독 한 형의 ’개장애인‘ 이라는 패드립 발언에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상담실에 마주 앉은 동경이는 눈물이 맺힌 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 모두가 청각 장애인이세요. 그리고 몇년 전 두 분은 이혼하셨고요. 아주 어릴때 부터 주변에서 ‘장애는 유전 아니냐? 부모님 어떻게 생기셨냐?’ 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또 이런 사실을 학교 선생님들이 알게 되면 나를 너무 불쌍하게 여기시는게 느껴져요. 그런 모든 게 너무 싫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들이 동경이네 집에 놀러왔다가 집에 계신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으시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하시는 낯선 동경이 어머니를 보고 친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누구셔? 어머니는 왜 인사도 안 받으셔?’ 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동경이는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든 친구들이 동경이를 보고 쑥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어릴적 부터 주변의 이런 불편한 시선을 묵묵히 참아온 그였지만 오늘 맞이한 친구들의 불편한 반응은 어린 동경이가 감당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퍼트린 친구를 찾아 그 자리에서 아무말 없이 때렸습니다. 다음 날, 청각장애인 어머니 대신 조부모님이 학교로 달려왔습니다. 조부모님은 교장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셨고, 이 모습을 보고 스스로 더욱 억울하다고 느낀 동경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친구를 또 한 번 때렸습니다. 그 날 이후 동경이는 ‘장애인 자식’에 이어 분노 조절이 안되는, 아니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막돼먹은 ‘폭력학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들이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오산으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다시 동네로 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등교한 중학교 첫날, 초등학교 때 동경이에게 맞은 친구를 다시 만났고 그 친구는 친구들에게 동경이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만 달랐지, 같은 상황을 맞이한 동경이는 또 다시 그 친구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부터 그는 무슨 일만 생기면 폭력을 사용했고,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생활할 때 나한테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폭력을 썼어요. 그 때는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거든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것,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늘 화가 나있고, 우울했던 거 같아요. 모든 걸 미리 반쯤 포기하고 살았어요. 얘기해도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으니깐요.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고요. 이제는 내 스스로를 좀 바꾸고 싶어요.“
이런 대화를 나눈 보름 뒤, 동경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요즘 얼굴이 많이 밝아진 거 같은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전에는 무슨 일이 생겨서 말을 하려고 하면 울기 부터 했어요. 근데 요즘은 울기는 해도 내 마음을 말로 표현 하려고 노력 중이예요. 실제로 말로 얘기해서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경험했고요. 동갑친구랑 마음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서로 얘기하면서 오해를 풀었어요. 서로를 더 이해했다고 해야 하나? 이런 일이 있고 나니 나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너무나 좋은 일지만 쉽지않은 도전이었을 거 같다는 나의 질문에 동경이는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매일 참다보니깐 혼자 있을 때 내가 진짜 내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내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요. 침대나 벽을 주먹으로 쳐요. 스스로 버티고만 있는 내 스스로가 너무 힘들게 느껴졌어요. 이런 감정들을 너무 오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요. 눈물이 났어요. 너무 비참하고요. 이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용기를 내기 시작했어요.” 자신이 스스로를 바꾸는 데 많은 힘과 동기가 필요했는데,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계획과 바램을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전보다 말이 더 많아진거 같아요. 전에는 내가 위로만 받길 원했는데, 이제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 때문에요. 그리고 그룹홈에 갈 계획인데요. 그룹홈에 가서도 더 정직해지고 싶어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얘기를 해줬을 때 숨기지 말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더 해야 할 거 같고요. 이렇게 노력해서 위로받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나오려는 노력을 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경이는 이제 천천히 그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외로운 시간을 지낸만큼 자신의 마음이 그랬던 것처럼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시작이겠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동경이의 마음의 밭도 더욱 굳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동경아, 이제 그만 울어.” (글: 임수미)
2023.08.08 (화)
일곱번째 이야기
"밖에서 생활할 때 나에게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폭력을 썼어요.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거든요."
(생활관 4개월차 동경이 이야기)
16살 동경이는 세품아에 들어온지 4개월 차 생활관 친구입니다. 아담한 체구에 귀여운 외모를 가진 동경이는 늘 힘없고 무기력해 보이는 모습이었습니다. 밖에서 힘있는 아이들에게 늘 돈을 가져다 주고, 심부름을 했던 이야기를 할 때면 어김없이 눈물을 흘렀지만, 세품아에 적응을 하면서는 자신의 이야기를 봇물처럼 쏟아내는 수다쟁이의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늘 아이들과의 관계가 어려웠고, 심지어는 나이 어린 동생들에게까지 휘둘리는 모습을 보이곤 했습니다. ’사람들과의 관계를 해결하는 건 혼자 사는 방법밖에 없어요.‘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더욱더 관계의 무기력함을 보이곤 했습니다.
타인의 무례함에도 저항을 하지 못하던 그가 유독 한 형의 ’개장애인‘ 이라는 패드립 발언에 분노를 참지 못했습니다. 상담실에 마주 앉은 동경이는 눈물이 맺힌 채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부모님 모두가 청각 장애인이세요. 그리고 몇년 전 두 분은 이혼하셨고요. 아주 어릴때 부터 주변에서 ‘장애는 유전 아니냐? 부모님 어떻게 생기셨냐?’ 라는 말을 많이 들었어요. 또 이런 사실을 학교 선생님들이 알게 되면 나를 너무 불쌍하게 여기시는게 느껴져요. 그런 모든 게 너무 싫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때, 친구들이 동경이네 집에 놀러왔다가 집에 계신 어머니를 보게 되었습니다. 인사를 해도 받지 않으시고 묵묵히 자기 일만 하시는 낯선 동경이 어머니를 보고 친구들은 깜짝 놀랐습니다. ‘누구셔? 어머니는 왜 인사도 안 받으셔?’ 친구들의 질문이 쏟아졌고, 동경이는 불안하기 시작했습니다. 다음날 학교에 갔는데 아니나 다를까 모든 친구들이 동경이를 보고 쑥덕거리기 시작했습니다. 아주 어릴적 부터 주변의 이런 불편한 시선을 묵묵히 참아온 그였지만 오늘 맞이한 친구들의 불편한 반응은 어린 동경이가 감당하기 쉽지 않았습니다. 그는 이 사실을 퍼트린 친구를 찾아 그 자리에서 아무말 없이 때렸습니다. 다음 날, 청각장애인 어머니 대신 조부모님이 학교로 달려왔습니다. 조부모님은 교장선생님이 보는 앞에서 피해자 부모에게 무릎을 꿇고 사과를 하셨고, 이 모습을 보고 스스로 더욱 억울하다고 느낀 동경이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어른들이 보는 앞에서 그 친구를 또 한 번 때렸습니다. 그 날 이후 동경이는 ‘장애인 자식’에 이어 분노 조절이 안되는, 아니 가정 교육을 제대로 받지 못한 막돼먹은 ‘폭력학생’이 되어 버렸습니다.
아들이 제대로 학교를 다닐 수 없을 것 같다고 판단한 어머니는 자신이 일하고 있는 오산으로 아들을 데려왔습니다. 그렇게 초등학교를 졸업하고 중학교를 입학하기 위해 다시 동네로 오게 되었습니다. 새로운 마음으로 등교한 중학교 첫날, 초등학교 때 동경이에게 맞은 친구를 다시 만났고 그 친구는 친구들에게 동경이 이야기를 다시 하기 시작했습니다. 학교만 달랐지, 같은 상황을 맞이한 동경이는 또 다시 그 친구를 때렸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 부터 그는 무슨 일만 생기면 폭력을 사용했고, 결국 중학교 2학년 때 정신병원에 입원을 하게 되었습니다. “밖에서 생활할 때 나한테 잘못했다고 생각되는 사람에게 무조건 폭력을 썼어요. 그 때는 내 스스로가 너무 불쌍했거든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것, 바꿀 수 있는 것이 하나도 없었어요. 그래서 늘 화가 나있고, 우울했던 거 같아요. 모든 걸 미리 반쯤 포기하고 살았어요. 얘기해도 사람들은 내 얘기를 들어주지 않았으니깐요. 그러다 보니 내 스스로가 하고 싶은 말을 제대로 하지 못하더라고요. 이제는 내 스스로를 좀 바꾸고 싶어요.“
이런 대화를 나눈 보름 뒤, 동경이를 다시 만났습니다. “요즘 얼굴이 많이 밝아진 거 같은데, 무슨 좋은 일이라도 있어?” “전에는 무슨 일이 생겨서 말을 하려고 하면 울기 부터 했어요. 근데 요즘은 울기는 해도 내 마음을 말로 표현 하려고 노력 중이예요. 실제로 말로 얘기해서 관계가 좋아지는 것도 경험했고요. 동갑친구랑 마음이 맞지 않아 티격태격 했는데 시간이 좀 지나고 서로 얘기하면서 오해를 풀었어요. 서로를 더 이해했다고 해야 하나? 이런 일이 있고 나니 나도 다른 사람의 감정을 이해하고 위로를 줄 수 있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처음 들었어요.” 너무나 좋은 일지만 쉽지않은 도전이었을 거 같다는 나의 질문에 동경이는 진지하게 설명을 이어갔습니다. “매일 참다보니깐 혼자 있을 때 내가 진짜 내가 아닌거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왜 그런 생각을 했어?” “내 스스로의 모습을 보면서요. 침대나 벽을 주먹으로 쳐요. 스스로 버티고만 있는 내 스스로가 너무 힘들게 느껴졌어요. 이런 감정들을 너무 오래 혼자만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닌가라는 생각도요. 눈물이 났어요. 너무 비참하고요. 이건 내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죠. 그래서 용기를 내기 시작했어요.” 자신이 스스로를 바꾸는 데 많은 힘과 동기가 필요했는데, 주변에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친구들과 선생님이 있어서 가능했다는 이야기도 잊지 않았습니다.
이후의 계획과 바램을 물어보았습니다. “제가 전보다 말이 더 많아진거 같아요. 전에는 내가 위로만 받길 원했는데, 이제는 누군가를 위로해 주기 때문에요. 그리고 그룹홈에 갈 계획인데요. 그룹홈에 가서도 더 정직해지고 싶어요. 상대방이 나에게 어떤 얘기를 해줬을 때 숨기지 말고 받아들이는 노력을 더 해야 할 거 같고요. 이렇게 노력해서 위로받고 위로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스스로의 마음을 바라보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리고 그 마음에서 나오려는 노력을 하는 것 또한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동경이는 이제 천천히 그 일을 시작하고 있습니다. 스스로 외로운 시간을 지낸만큼 자신의 마음이 그랬던 것처럼 외로운 사람의 마음을 더 잘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람이 될 수 있을거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제 시작이겠지만, 비 온 뒤에 땅이 더 굳어지듯이, 동경이의 마음의 밭도 더욱 굳어지길 기대해 봅니다. “동경아, 이제 그만 울어.” (글: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