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아홉번째] 승찬이 이야기

관리자
2023-09-04
조회수 285


9월 5일 (화)     

아홉번째 이야기     



"왜 우리 부모는 날 도와주지 않을까?

짜증 났지만 그냥 현실을 인정하는게

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승찬이의 찐! 레알! 생생! 자립이야기)




 

  올 여름 8박9일간 진행된 생활관 도보여행에 담당 선생님들을 도와 형노릇을 해 준 친구가 하나 있었습니다. "이번 여행이 재밌기도 하고 힘들기도 했어요. 애들 노는거 보면 흐뭇하기도 한데, 맨날 싸우는 애들을 보면 힘들기도 하더라고요. 딱히 해결을 못해주는 나를 보면서 한계도 느꼈고요." 의젓한 교사멘트로 나의 웃음을 자아 낸 그는 올초까지 세품아에서 생활했던 20살 승찬이입니다. 그는 작년 4월부터 1년간 세품아 생활을 하다 올해 경기도에 있는 모대학 건축관련학과에 입학해 말 그대로 자립의 길을 걷고 있는 친구입니다. 


대학 새내기 생활은 어땠는지 무지 궁금하네요. "처음에는 너무 설렜어요. 고등학교도 제대로 못 다녔는데, 대학공부를 잘 따라갈 수는 있을까? 성인들의 학교 생활은 어떨까? 걱정도 됐어요. 근데 다행인게, 사람들이 먼저 다가와 줬어요. 선배들은 모르는 거 있음 도와주겠다고 하고요. 나를 좋게 봐주는 사람들이 있으니 좀 더 잘해야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세품아에서도 잔소리꾼으로 통했던 그는 학교에서도 '선한 잔소리꾼'으로 통하는 듯 했습니다. "여기 학교에도 적응 못하고 수업에 안나오는 친구들이 있어요. 세품아 동생들 생각이 나요. 두 명이 있었는데 제가 계속 연락하고 잔소리를 좀 했어요. 그래서 그 두 명 모두 학사경고 없이 이번 학기를 넘길 수 있었어요. 누군가를 돕고 잔소리를 하는게 내 스스로에게도 도움이 되는거 같아요. 남에게 잔소리 하려면 나도 그렇게 살아야 하잖아요. 하하 " 


승찬이는 보증금200에 40만원짜리 월세에 혼자 살고 있습니다. 딱히 경제적 도움을 받을 곳이 없는 승찬이는 주말에는 고기집 알바를,평일에는 근로장학생을 하며 한 달에 80여만원을 벌어 생활을 이어 갔습니다. "처음에는 설렘의 감정이 커서 공부하면서 일하는게 힘든 줄 몰랐어요. 근데 5월 말이 되니깐 너무 피곤하고 힘들더라고요. 초반에는 돈이 없어 많이 힘들었죠. 세품아 밥이 너무 그리웠어요. 아무래도 라면이 젤 싸고 해먹기 좋으니 라면만 먹었어요. 첫달에는 한달에 라면을 80개 정도 먹은거 같아요. 5킬로가 찌더라고요 ;;; " 살아가는 것 자체가 쉬운것 하나 없는 일일 테지만, 그 중 승찬이를 가장 힘든게 한 것은 그의 마음이었습니다. "80만원 벌면 월세도 내고 교통비도 드니깐 먹고 싶은 걸 제대로 못 먹어요. 그러다 보니 짜증이 나더라고요. '왜 우리 부모는 날 도와주지 않을까?' 이런 생각에 마음이 힘들었는데 나중에는 그냥 현실을 인정하는게 내 마음이 편하더라고요. 그리고 또 하나는 외로움과의 싸움이요. 밤에 집에 오면 혼자잖아요. 그 때 세품아 생각이 나요. 세품아에서는 늘 사람들이 있었잖아요. 선생님들이 좋은 얘기를 많이 해주셨는데 밖에서는 ’힘들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그래서 혼자 술도 많이 마신거 같아요." 


승찬이는 올 여름방학 동안 건설현장에서 일을 해 다음 학기 등록금을 모두 마련해 놓은 상태입니다. 그런 그에게 큰 걱정거리가 하나 있습니다. "9월11일에 재판이 하나 있어요. 2년 전 사건인데 이제 열리게 됐어요. 변호사님이 실형을 살거 같다고 하셨어요. 첨엔 걱정이 많이 됐지만 지금은 '내가 한 일이니 어쩔 수 없지' 라는 생각이 들어요." 반 체념 상태의 그에게 더욱 두려운 것이 따로 있습니다. "학교 사람들이 알까 봐 걱정돼요. 평소에 좋은 사람이 되기 위해 노력했는데 이게 한 번에 무너질 거 같아서요. 제가 만약 실형을 살게 되면 다시 학교로 돌아갈 수 없을거예요." 새로운 삶에 성공하는 듯 했지만 과거 자신의 행동으로 인해 그의 인생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순간입니다. 그리고 그 흔들리는 순간 앞에서 어찌할 도리가 없어 그냥 애타는 마음으로 기다리는 수 밖에 없는 승찬이 입니다. 


그가 마지막으로 세품아 선생님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습니다. "항상 아이들을 보듬어 주셔서 너무 고마워요. 그리고 '실패해도 괜찮다'는 말을 해주셔서 더욱 고맙습니다. 밖에 나가니깐 이 말이 가장 생각나더라고요. 외로울때도 선생님들이 가장 생각났고요. 감사합니다." 어색하게 웃는 승찬이의 모습에 마음이 아련해 지는 순간입니다. "승찬아! 어떤 결과가 나오든 세품아 선생님들은 너를 응원할거야. 그리고 세품아를 떠나 세상의 어려움에 맞서 싸워왔던 지난 6개월의 삶에 대해서도 너무 대견하다는 얘기 꼭 해주고 싶었어. 잘 살아줘서 너~무 고맙다."  (글: 임수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