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품아 저널


[저널 열한번째] 태민이 이야기

관리자
2023-10-10
조회수 245

10월 10일 (화)    

열한번째 이야기    





"내가 나쁜 애가 된거 같아요. 나도 당해봤는데… 

나도 나를 때린 사람과 똑같이 된 거잖아요."

(여전히 현재도 고군분투 중인 생활관 태민이 이야기)





"생활관 애들이 나보고 많이 달라졌대요. 첨에는 어깨에 힘주고 걷고, 형들에게 오버해서 인사하고 힘이 세 보이는 애들하고만 같이 다니려고 했는데 지금은 걷는것도 인사하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워 보인데요. 저도 사람들을 모두 똑같이 대하려고 노력하고 있고요." 이제 생활관 4개월 차인 태민이가 웃으며 이야기합니다. 이런 얘기를 들으면 '태민이가 처음에는 엄청 강하고 거친 캐릭터였구나' 생각하시겠지만 사실은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선생님들과 눈도 잘 못 마주치고 자기의 의견도 제대로 이야기하지 못하는 그런 수줍은 친구였습니다. 어쩌면 태민이는 그들만의 리그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에 힘도 주고 크게 인사도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렇게 혼자 강한 척은 다하고 다녀도 정작 본인을 제외한 다른 친구들은 그가 여린 친구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강약약강에 익숙한 몇몇 친구들이 그를 괴롭히기 시작했습니다. 그럴 때마다 태민이는 '내가 맞을만 하니깐 그랬겠지' 라고 생각했지만, 그런 그를 보며 마음 아파하는 선생님들은 태민이를 도와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이번 일로 곧 대화모임(세품아 공동체 내 갈등 상황이 발생했을때 공동체가 함께 모여 피해, 가해 사실에 대해 이야기 하며 해결방안을 찾아가는 모임) 이 열렸습니다. 자신의 일로 대화모임이 열리는 것, 자신을 괴롭혔던 아이들의 이야기를 듣는 것이 태민이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습니다. 더군다나 모든 사람들이 자신의 피해사실에 집중하는 경험은 태민이 자신을 더욱 초라하고 움츠려들게 만들었습니다. 대화모임 이후 상황은 전보다 나아졌지만 태민이는 여전히 고개를 숙이고 다녔습니다. 그런 그를 보며 같이 생활하는 우태형이 이렇게 말했습니다. "야, 눈치 보지마. 니가 잘못한 것이 없는데 왜 눈치를 봐?" 형의 말에 고개가 끄덕여졌고 더는 이런 상황에 신경을 쓰지 않겠노라 그는 다짐했습니다. 생활관에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형과 친구들이 있고, 자신의 상황에 대해 걱정해주는 선생님들의 마음이 느껴지자, 태민이는 용기를 내기 시작했습니다. "나한테 그렇게 말하지 말아줘!!!" 누군가가 시켜서 자신에게 ‘깔미’라고 말하는 친구에게 태민이는 용기를 내어 단호하게 응대하였습니다. 그리고는 아무일 없다는 듯 그들을 평소처럼 대하고 자신의 일에 집중했습니다. 그랬더니 생각지도 못한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더 이상 자신들이 원하는 반응이 나오지 않자, 태민이를 괴롭혔던 친구도, 그 친구에게 괴롭힘을 조정했던 형도 더 이상 태민이를 괴롭히지 않았던 것입니다. 


"관계의 정답을 찾은거 같아요. 전에는 제가 약한 사람이었어요. 이제는 맞고 싶지 않아요. 요즘은 마음을 지키려고 아이들과 거리두기를 할 때도 있어요. 친해지면 욕과 몸장난이 심해지는데 저는 그런게 싫어요. 이제는 싫으면 싫다고 개인적으로 얘기해요. 물론 시간이 좀 지나고 감정이 사라지면요. 혼자 맘고생 하는 것 보다 저는 이것을 선택하기로 했어요." 가장 힘든 문제를 풀어서인지 태민이의 얼굴에는 요즘 웃음이 많아졌습니다. 전보다 많이 편안해 보였고, 선생님들을 만나면 눈을 마주치며 귀여운 미소로 먼저 인사를 건네기도 했습니다. "처음에는 태민이를 소극적이고 자신감 없는 친구로 봤는데요. 요즘은 똑똑수업때도 자신의 생각을 자신감 있게 얘기하는 것을 보고 깜짝 놀랄때가 많아요."(최지영 PM) "처음에 태민이랑 상담할 때가 생각이 나요. 저랑 눈도 마주치지 않고, 몸도 반대로 돌려서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를 싫어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함께 상담을 진행해 나가다 보니 그게 아니라는 걸 알았어요. 누군가가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궁금해 하는 상황 자체가 부끄럽고 민망했나봐요. 지금도 여전히 부끄러워 하는 모습이 남아 있지만, 때로는 적극적으로 자신의 이야기를 하는 모습도 보게 된답니다." (한주희 PM) 같이 수업과 상담을 진행하는 선생님들의 말처럼 태민이는 조금씩 변해가기 시작했습니다. 


그의 변화에는 그를 믿어주고 지지해주는 선생님들의 역할이 컸습니다. "제가 생활 초기에 어려운 일을 많이 당했잖아요. 힘들 때 제 얘기를 들어주시고 도와주셨던 선생님들이 너무 고마워요.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 않아요. 노력하는 모습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실제로 그는 착한 사람,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 했습니다. 특별히 관계에 민감한 그는 생활관에서 같이 생활하는 친구들을 모두 공평하게 대하려고 노력했습니다. 특히 힘들어 하는 친구가 있으면 더 눈여겨 보고 이야기를 들어 주었습니다. 매일 그 친구의 상태를 살피기도 했고, 도움이 필요한 것 같다는 느낌이 들때는 선생님들께 도움을 청하기도 했습니다. 도움이 필요했던 과거의 자신처럼 그들을 돕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사람들이 저를 가능성이 있는 사람으로 봐 주었으면 좋겠어요. 변화 될 가능성이요. 제가 전보다는 많이 좋아졌지만 아직 완벽하지는 않죠. 진짜 완벽은 유혹도 화나는 것도 다 참는것 아니예요?" 


모두가 그렇듯, 그는 아직 완벽하지 않았고, 곧 그에게도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자신이 하는 말을 계속 무시하고 장난을 치는 친구에게 처음에는 말로 그만하라고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러나 장난이 멈추질 않자, 그는 그 친구의 얼굴을 주먹으로 때리고 발로 배를 찼습니다. "나도 나쁜 애가 된거 같아요. 나도 당해봤는데… 나도 나를 때린 사람과 똑같이 된 거잖아요. 사과는 했는데 후회가 돼요. 나를 만만히 보는 그 행동이 내가 이렇게 하지 않으면 바뀌지 않을거라 생각했어요. 후회가 돼요. 후회가… 아이들이 저만 쳐다 보는 것 같아요." 피해자라고만 생각했던 자신이 가해자로 변해 버리는 순간이었습니다. 보통 영화나 드라마처럼 태민이의 이야기도 아름답게 끝나면 좋으련만 현실은 그렇지가 않습니다. 그는 사과와 자신의 행동에 대한 책임의 과정을 모두 마친 후 지금은 일상으로 돌아왔습니다만, 현실이 늘 그렇듯, 그는 여전히 냉탕과 온탕을 오가며 자기 자신과 싸우는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서도 생활관 선생님들은 저널의 주인공으로 태민이를 추천해 주셨습니다. 완벽하지는 않지만 가능성 있는 사람으로 자신을 봐 주길 원했던 태민이의 바람처럼  현재는 실수가 ing중이지만, 냉탕보다는 온탕에 있는 시간이 조금씩 늘어가고 있는 그의 작은 변화를 세품아 선생님들은 아마도 보고 계시기 때문이 아닐까요?  "태민이의 고군분투를 응원합니다!!" (글: 임수미)